대선후보를 골라내는 방법
	2002-06-28
대선후보를 골라내는 방법 최근 한 신문사가 우리 국민들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조사를 했다. 진보와 보수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조사결과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의 정치경제적 이슈에 대해 거의 의견차이가 없었다. 다만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점과 인권문제에 대해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즉,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견해차이는 대북 문제와 인권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선진국과는 달리 환경, 낙태, 마약 노동 문제 등이 큰 쟁점이 되지 못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문제를 주요쟁점으로 들고 나온 적도 없다. 흔히 한나라당을 보수적, 민주당을 진보적이라고 말하지만, 성장이나 복지등 경제정책에서 양자간 차이는 미세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국민여론을 의식해서 모두 두리뭉실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북 문제와 관련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차이는 크다. 이런 점에서 노후보를 진보, 이 후보를 보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와 진보를 좌파, 우파로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과거 공산주의자들을 좌파로 불렀던 탓인지 좀 꺼림칙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보수 쪽에서는 진보 쪽을 급진이라고 몰아 세우고, 진보 쪽에서는 보수 쪽을 수구라고 규정한다. 당연히 보수는 수구라는 말을 싫어하고 진보는 급진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나라가 기울어 개혁적 방법이 광범위하게 동원될 필요가 있다면 급진적 세력이 개혁을 주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기존의 시스템이 충분히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면 수구세력이 안정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혼란케 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진보세력이 집권할 경우 기존의 보수세력은 정권에 반대하는 주장을 많이 내놓기 때문에 개혁세력으로 불리울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려하기 때문에 보수화 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세력이 보수, 민주화를 외치는 세력이 진보로 불리웠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에 대해 더 포용적이고, 노동자의 입장을 더 이해하며, 서민계층의 권익보호에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 진보, 그 반대편이 보수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많다. 양쪽의 주장 중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 쪽이 더 국민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정치적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양쪽은 모두 상대를 이념적 보완재나 대체재로 생각지 않고 "제거되어야 할 상대"로 보는데 문제가 있다. 진보 쪽에서는 보수를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체제의 음모적 집단"정도로 간주하고 있고, 보수 쪽에서는 진보를 "노조 등 이익집단에 편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한과도 야합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양쪽의 차이는 단순히 현존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개혁할 것인가의 차이가 아니라. 상대방을 반드시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토론이나 이념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드러내기 보다 상대방 진영의 유력 인사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 "형편없는 인물"로 규정해서 퇴출시키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좋은 예가 연세대 송복 교수의 정년퇴임 강연장에서 있었다. 송 교수는 전통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해 사물을 보는 학자다. 따라서 보수라고 분류될 수 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토론장이나 지면을 통해 반박하면 된다. 피켓을 들고 나타나 "떠나라"는 식으로 망신을 주는 것은 진보도 급진도 아니고 폭력에 가까운 것이다. 송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고 않고는 자유지만,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는 것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된다. 누구든 판을 바꾸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하고, 지지자를 모아 선거를 통해 바꾸면 된다. 그런 것은 시간이 걸리니 겁을 주거나 집단행동을 해서 입을 틀어막아야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우리사회가 선진화되자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수용해야 한다. 노동자 대표도 환경주의자들도 총선에서 당선되어 우리 국회가 다양한 이익집단을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사회에 급진주의자들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개탄해서는 안된다. 그들을 지지하는 일정수의 유권자가 있다면 그들은 존재할 이유가 있고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과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이라도 사용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흔히 보수세력에 대해 개혁을 주장하는 집단에서는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타락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깨끗한 것처럼 보였을 뿐, 기회가 주어지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각종 게이트에서 이미 보았다. YS나 DJ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YS는 보수에 가깝고 DJ는 진보에 가까운 성향이다. 두 사람은 모두 군부독재에 대항해서 민주화를 기치로 내세웠다. 시간이 지나보니 두 사람은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군부독재에 대항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구호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해 내세웠을 뿐, 막상 집권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왕적 대통령 노릇을 했다. 두 사람 다 친인척의 비리에 둔감했다. 두 사람 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의원 빼가기에 열중했다. 따라서 정치지도자가 어떤 정강정책을 내세우는지 보기 전에 그의 인간성을 더 살펴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페어플레이를 하겠다는 지도자가 아니라면 그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 현재 대통령 후보로 나와있는 이회창, 노무현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개혁적이냐 누가 더 경제를 잘 아느냐로 후보의 자질을 검증해서는 안될 것 같다. 누가 더 원칙을 잘 지키고 페어플레이를 할 것이냐를 보아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과거 정권을 돌이켜 보면 정권교체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 때문에 4.19 혁명이 일어나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다. 장면 정권은 부패하지는 않았지만 무능했다. 이 때문에 5.16 혁명이 나고 어쨌든 효율적인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박 정권은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 결국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쳐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는 많이 신장되었다. DJ 정부 이후 민주화에 대한 시비는 없다. 대북 포용정책과 포퓰리즘적 분배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는 누가 집권하더라도 기본적 골격을 크게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DJ가 집권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념성향에 대해 걱정했다. 그러니 이제 DJ의 이념이 나라를 망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DJ정부에서 저질러진 부정부패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을 뿐이다. YS도 마찬가지다. 그의 보수적 성향이 환란을 가져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YS 정부가 무능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한 정권의 실패가 다음 정권의 성격을 규정할 가능성이 크다. 최고지도자의 이념성향은 우리나라의 진로자체를 바꿀 정도의 영향은 없다. 이승만 정권이후 부정부패는 어느 정권에서도 해결된 적이 없다. 외국의 원조물자를 가로채느냐 재벌과 결탁하느냐 벤처기업을 이용하느냐의 차이 뿐이었다. 시장은 개방되고 있고 민주화는 신장되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보수-진보이념 논쟁과 지역갈등, 또는 서민-귀족문제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에서 보듯이 올 12월 대선 후 다음 정권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부정부패의 해소다. 따라서 쓸데없이 후보자의 이념성향을 따지거나 지역갈등문제를 재탕 삼탕하기 보다 누가 더 효과적인 부정부패 대책을 제시하느냐가 후보자 선정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유한수(비전@한국 공동대표, 한양대 겸임교수/경제학) 출처 - 비전@한국 홈페이지 회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