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위한 보험업법 인가
	2002-06-21
누구 위한 보험업법 인가 며칠 전 정부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일간지를 통해 발표됐다. 이번 개정안은 25년 만의 전면 개정으로, 보험소비자들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동안의 시장 변화를 충분히 반영했을 것으로 본다. 규제완화와 보험가입자 보호 강화 등의 기본방향을 볼 때 그러한 기대를 갖게 됨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 중에는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들이 몇가지 눈에 띄어 이를 짚어보고자 한다. 개정案 초점은 규제완화 먼저 25년 만에 개정이라는 것은 보험업법이 타 금융업법에 비해 낙후됐으며, 이는 그만큼 정부가 보험시장을 소홀히 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보험산업이 급변하는 국내외 시장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시때때로 판을 바꿔줘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좀 늦은 감은 있으나 이번에 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한 것은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과거에는 열거된 자산으로 제한했던 재산운용이 개정안에 의하면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어 보험회사는 금지된 사항 외에는 무엇이든 자율적으로 선택해 운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주식이나 대출에 대한 소유한도가 폐지되고 부동산소유와 해외투자 한도는 확대됐다. 그러나 이런 재산운용 제한의 완화가 보험회사의 건전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부 보험회사가 운용하는 자산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소유와 해외투자를 대폭 확대할 경우 국내외 시장변동에 따라 회사들의 재무상태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험회사의 재무상태가 악화돼 파산 가능성이 커지게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보험가입자들로서 고수익을 추구하는 보험회사들의 위험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재산운용의 규제완화는 보험회사에만 편익을 주고 소비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경우에도 위험도가 높은 주식(보통주)이나 부동산에는 일정 한도로 보유를 제한하고, 국공채와 같이 위험도가 매우 낮은 자산에는 한도를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정부 규제의 기본방향이 철저하게 재무건전성 유지에 있으며, 이를 통해 보험가입자 보호가 이뤄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개정 보험업법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자산에 대한 투자는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보험사 파산시 의무보험 피해자의 손해를 전액 지급보장한다는 내용은 보험가입자 보호 강화 차원에서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기존의 보험가입자 보호장치가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즉 1998년 각 금융권역의 감독기관이 통합되면서 예금자나 보험가입자를 보호해 주는 기구들도 획일적으로 예금보험공사에 통합됨으로써 초래된 문제의 일환이라 하겠다. 이는 예금과 보험계약의 특성을 무시한 채 똑같은 보장한도를 적용하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고위험 투자 한도 정해야 우리가 일상생활을 위해 보유하는 예금은 단기적 지불결제가 주목적으로 그 규모는 가구당 보통 1천만원이 넘지 않는 반면 가장(家長)의 예기치 않은 사망이나 노후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생명보험.연금보험은 장기적 목적이며 급여액은 수천만원이나 1억원이 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현행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하면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파산할 경우 예금자와 보험가입자 양측에 똑같이 5천만원의 보상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보험가입자 측에서 보면 결코 충분한 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예로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주에서 예금자에 대한 보장한도는 10만달러이며, 보험가입자에게는 예금자를 훨씬 웃도는 30만달러로 지정돼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장상의 괴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가입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예금자보호장치와 차별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에 모든 시장참여자가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안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李淳在 (세종대 교수·경영학) 출처 - 중앙일보 2002. 6. 2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