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경희궁 복원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섰고, 서소문 옛 대법원 자리에 재건축한 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선유도와 난지도에 대형 공원이 개장돼 시민들이 붐빈다. 보행자 전용의 선유교와 조형미가 돋보이는 가양대교도 개통됐다.
서울의 낮과 밤도 환해졌다. 걷고 싶은 길 조성과 도로시설물 정비로 거리가 쾌적해졌다. 곳곳에 조성된 꽃길과 신록이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답다. 조명으로 수를 놓은 밤의 한강다리들은 환상적이다.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도 서울의 야경을 인상적으로 연출한다.
국제행사를 치르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 업그레이드된다. 서울은 88올림픽을 통해서 도시건축과 디자인문화가 한 단계 도약했다. 14년 만에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며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사회문화적인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10개 도시에 건설된 월드컵경기장은 FIFA가 ‘꿈의 구장’이라고 평가할 만큼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개최 도시의 미관이 개선됐고 지역별 축제와 문화행사, 관광자원도 풍성해졌다.
그런데 월드컵을 맞는 국민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월드컵 홍보관으로 꾸민 지하철역을 오가는 승객들, 32개국 깃발이 나부끼는 거리의 분위기도 무덤덤하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라는 수사(修辭)가 무색할 정도다.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이 월드컵에 열광하고 감동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남미나 유럽처럼 축구가 생활화되지 않은 데서 오는 거리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6년간 수조원을 들여 준비한 월드컵을 행사로만 흘려버릴 수는 없다. 월드컵은 축구제전이지만 개최국의 국가 이미지와 문화역량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데 우리는 16강에만 너무 집착하여 많은 것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16강에 대한 기대는 국민 모두의 염원이지만 너무 매달리다 보면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축구공은 둥글다. 한쪽에서 보면 월드컵은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축구쇼’다. 다른 편에서 보면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가 어울리는 인류화합의 축제다. 우리는 이 모두를 아울러 둥글게 월드컵을 치러야 한다. 한국축구가 16강에 들도록 목청껏 응원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문화역량을 드높이는 ‘총체 월드컵’에 나서야 한다.
82년 월드컵을 치른 스페인은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를 씻고 문화관광의 나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경기 위주이던 월드컵에 문화를 접목한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의 성공 역시 ‘문화올림픽’이 기폭제가 되었다. 환상적인 개·폐회식은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과시했고,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폐쇄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개방적으로 전환시켰다.
6월 한 달 서울을 비롯한 10개 개최도시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월드컵 문화축제가 펼쳐진다. 한강변의 세계불꽃 축제, 난지도의 깃발미술축제, 광화문의 드럼페스티벌을 위시해 개최도시별 전통과 현대예술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등 공연장의 축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대학로 문화거리의 공연예술제도 볼거리다.
이처럼 넘쳐나는 문화잔치도 보고 즐기는 관중이 없으면 시들해진다. 잔치의 주인인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도 신명이 난다. 피부색과 문화가 다른 세계인들과 어깨동무하며 축제장을 누빌 때 월드컵 열기도 달아오를 것이다. 각국의 응원단도 경기만을 보러 오지는 않는다.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즐기기를 원한다. 그들을 잔치판에 초대해 함께 어우러진다면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가질 것이다.
잔치는 시작됐다. 이제 우리는 잔칫집 주인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는 놀이꾼이 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문화를 보여주되 열린 마음과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면 되는 것이다. 손님을 즐겁게 해주려면 우리가 먼저 참여하고 감동을 느껴야 한다. 단군 이래 최대 행사를 치른다는 행복감을 가져야 한다. 문화 월드컵은 국민 전체가 만드는 한국의 이미지이며 성공 월드컵의 키워드다.
월드컵 축제 놀이꾼 되자
요즘 서울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경희궁 복원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섰고, 서소문 옛 대법원 자리에 재건축한 시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선유도와 난지도에 대형 공원이 개장돼 시민들이 붐빈다. 보행자 전용의 선유교와 조형미가 돋보이는 가양대교도 개통됐다.
서울의 낮과 밤도 환해졌다. 걷고 싶은 길 조성과 도로시설물 정비로 거리가 쾌적해졌다. 곳곳에 조성된 꽃길과 신록이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답다. 조명으로 수를 놓은 밤의 한강다리들은 환상적이다.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도 서울의 야경을 인상적으로 연출한다.
국제행사를 치르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이 업그레이드된다. 서울은 88올림픽을 통해서 도시건축과 디자인문화가 한 단계 도약했다. 14년 만에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며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사회문화적인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10개 도시에 건설된 월드컵경기장은 FIFA가 ‘꿈의 구장’이라고 평가할 만큼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개최 도시의 미관이 개선됐고 지역별 축제와 문화행사, 관광자원도 풍성해졌다.
그런데 월드컵을 맞는 국민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월드컵 홍보관으로 꾸민 지하철역을 오가는 승객들, 32개국 깃발이 나부끼는 거리의 분위기도 무덤덤하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라는 수사(修辭)가 무색할 정도다.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이 월드컵에 열광하고 감동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남미나 유럽처럼 축구가 생활화되지 않은 데서 오는 거리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6년간 수조원을 들여 준비한 월드컵을 행사로만 흘려버릴 수는 없다. 월드컵은 축구제전이지만 개최국의 국가 이미지와 문화역량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데 우리는 16강에만 너무 집착하여 많은 것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16강에 대한 기대는 국민 모두의 염원이지만 너무 매달리다 보면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축구공은 둥글다. 한쪽에서 보면 월드컵은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축구쇼’다. 다른 편에서 보면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가 어울리는 인류화합의 축제다. 우리는 이 모두를 아울러 둥글게 월드컵을 치러야 한다. 한국축구가 16강에 들도록 목청껏 응원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문화역량을 드높이는 ‘총체 월드컵’에 나서야 한다.
82년 월드컵을 치른 스페인은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를 씻고 문화관광의 나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경기 위주이던 월드컵에 문화를 접목한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의 성공 역시 ‘문화올림픽’이 기폭제가 되었다. 환상적인 개·폐회식은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과시했고,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폐쇄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개방적으로 전환시켰다.
6월 한 달 서울을 비롯한 10개 개최도시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월드컵 문화축제가 펼쳐진다. 한강변의 세계불꽃 축제, 난지도의 깃발미술축제, 광화문의 드럼페스티벌을 위시해 개최도시별 전통과 현대예술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등 공연장의 축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대학로 문화거리의 공연예술제도 볼거리다.
이처럼 넘쳐나는 문화잔치도 보고 즐기는 관중이 없으면 시들해진다. 잔치의 주인인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도 신명이 난다. 피부색과 문화가 다른 세계인들과 어깨동무하며 축제장을 누빌 때 월드컵 열기도 달아오를 것이다. 각국의 응원단도 경기만을 보러 오지는 않는다.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즐기기를 원한다. 그들을 잔치판에 초대해 함께 어우러진다면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가질 것이다.
잔치는 시작됐다. 이제 우리는 잔칫집 주인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는 놀이꾼이 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문화를 보여주되 열린 마음과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면 되는 것이다. 손님을 즐겁게 해주려면 우리가 먼저 참여하고 감동을 느껴야 한다. 단군 이래 최대 행사를 치른다는 행복감을 가져야 한다. 문화 월드컵은 국민 전체가 만드는 한국의 이미지이며 성공 월드컵의 키워드다.
鄭重憲 ( 논설위원 )
출처 - 조선일보 2002. 5. 25 문화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