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DJ)이 다가오는 양대 선거에 중립을 지키고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11월 총재직을 사퇴한 데 이어 평당원 자격마저 벗어던진 셈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 결심은 작금의 어려운 정치현실을 조기에 전환시켜 보려는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첫째, 한국의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을 통해 적지 않은 힘을 받아왔다. 민주당이 있었기에 DJ의 개혁은 힘을 받을 수 있었다. 몸집을 불린 여당이 DJ의 국정수행에 방패막이가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한 고리를 이제 끊는다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대통령직에 누(累)가 된다는 짧은 계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앞으로 또 다시 국정수행에 정당의 힘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는 어떻게 대통령 혼자 국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1997년 말 대선 중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국정이 책임있게 운영되지 못한 교훈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남북관계나 국제관계에서 어떤 일이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기관리’라는 대통령의 직무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둘째,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고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이 DJ의 주요 정책노선이 된 것은 공지의 일이다. 국정의 6분의 1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당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책임정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닌가? 또 헌법 제69조에 따라 대통령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하는데, 꼭 소속 정당을 떠나야 국정에 전념할 수 있다는 논리에는 무리가 많다. 어떤 경우에도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이 오랫동안 빠질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정권의 평화적 이양은 대통령 직무 중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점하는 것이다.
셋째, 사실상 당권과 대통령권(대권)이 쉽게 분리되지 않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의 탈당은 정당정치의 발전이나 책임정치의 구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당정치는 정당이 공당으로서 내건 정책경쟁에서 국민들이 엄중한 선택을 함으로써 발전한다. 그런데 이제 그 정책을 실현하는 정당, 즉 집권 여당이 없어진 것이다. 말만이 무성한 정당 앞에서 국민들의 선택은 상징성과 홍보효과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책임정치도 문제에 봉착한다. 이제 소수당이 된 과거의 여당에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10개월은 정부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 공론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국민이 선거로 심판할 여지는 줄어든다. 청와대의 짧은 계산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통령의 탈당은 여러 가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당장 누구에게 어떤 이해득실이 생길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는 생물이고 아직도 지각은 유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집권 집단의 비리문제를 넘어가고, 대선 후보자에게 부담을 더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야당으로서는 공격의 대상이 양분됨에 따라 탄력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는 이번부터라도 헌정상 세번째 반복되는 대통령의 종반 탈당이 초래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책임정치와 정당의 연속성을 바라고 정책정당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무언가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DJ 탈당을 진일보한 정치행위로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중심제는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직을 겸하고 당정협의를 하는 등 후진국 권위주의 정치에서나 찾아볼 만한 권력집중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당권과 대통령권의 분리를 가능하게 하면서 정권의 인수인계 과정에 국정의 연속성과 정당정치의 발전이 훼손되는 일이 없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脫黨'은 책임정치 포기
김대중 대통령(DJ)이 다가오는 양대 선거에 중립을 지키고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11월 총재직을 사퇴한 데 이어 평당원 자격마저 벗어던진 셈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 결심은 작금의 어려운 정치현실을 조기에 전환시켜 보려는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첫째, 한국의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을 통해 적지 않은 힘을 받아왔다. 민주당이 있었기에 DJ의 개혁은 힘을 받을 수 있었다. 몸집을 불린 여당이 DJ의 국정수행에 방패막이가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한 고리를 이제 끊는다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대통령직에 누(累)가 된다는 짧은 계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앞으로 또 다시 국정수행에 정당의 힘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는 어떻게 대통령 혼자 국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1997년 말 대선 중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국정이 책임있게 운영되지 못한 교훈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남북관계나 국제관계에서 어떤 일이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기관리’라는 대통령의 직무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둘째,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고 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이 DJ의 주요 정책노선이 된 것은 공지의 일이다. 국정의 6분의 1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당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책임정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닌가? 또 헌법 제69조에 따라 대통령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하는데, 꼭 소속 정당을 떠나야 국정에 전념할 수 있다는 논리에는 무리가 많다. 어떤 경우에도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이 오랫동안 빠질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정권의 평화적 이양은 대통령 직무 중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점하는 것이다.
셋째, 사실상 당권과 대통령권(대권)이 쉽게 분리되지 않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의 탈당은 정당정치의 발전이나 책임정치의 구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당정치는 정당이 공당으로서 내건 정책경쟁에서 국민들이 엄중한 선택을 함으로써 발전한다. 그런데 이제 그 정책을 실현하는 정당, 즉 집권 여당이 없어진 것이다. 말만이 무성한 정당 앞에서 국민들의 선택은 상징성과 홍보효과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책임정치도 문제에 봉착한다. 이제 소수당이 된 과거의 여당에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10개월은 정부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 공론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국민이 선거로 심판할 여지는 줄어든다. 청와대의 짧은 계산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통령의 탈당은 여러 가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당장 누구에게 어떤 이해득실이 생길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는 생물이고 아직도 지각은 유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집권 집단의 비리문제를 넘어가고, 대선 후보자에게 부담을 더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야당으로서는 공격의 대상이 양분됨에 따라 탄력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는 이번부터라도 헌정상 세번째 반복되는 대통령의 종반 탈당이 초래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책임정치와 정당의 연속성을 바라고 정책정당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무언가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DJ 탈당을 진일보한 정치행위로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중심제는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직을 겸하고 당정협의를 하는 등 후진국 권위주의 정치에서나 찾아볼 만한 권력집중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당권과 대통령권의 분리를 가능하게 하면서 정권의 인수인계 과정에 국정의 연속성과 정당정치의 발전이 훼손되는 일이 없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 李達坤 / 서울대 교수·정책학 )
출처 - 조선일보 2002. 5.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