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후반기에도 法治 기대 어려운가
	2005-08-26
집권 후반기에도 法治 기대 어려운가 25일 밤 KBS1 TV로 방영된 참여정부 2년6개월에 즈음한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대부분이 법치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는 거리가 있는 세금 인상에 대한 동의를 강요하는 듯한 표현이나,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결정에 대한 강렬한 불만 표출은 그동안 참여정부가 법치를 경시해 왔다는 비판적 평가에 또 다시 근거를 제공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사실 역대 정부 가운데서 참여정부의 집권 전반기만큼 법치주의가 정치적 논쟁의 핵심적 이슈로 많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참여정부에서는 권력이 지배하는 권치(權治)에서 법이 지배하는 법치(法治)로 발전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데 비해 비판적 입장에서는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의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그러한 상반된 평가는 정치적 이해가 달라서 그러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법을 보는 잣대가 서로 다르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즉, 참여정부는 법을 개혁이라는 도덕적 가치의 실현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권력기관의 권력 남용 등 사회적 특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목표 달성에 최우선적 가치를 두고, 실정법 체계나 사법제도가 목표 달성의 효율성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되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목표 달성에 적합하게 법 체계 또는 사법부가 순응하거나 목표에 맞추어 신속히 개편돼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 참여정부가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 수준에 맞추어 제정돼 있는 것도 아니고 제정되어서도 안 되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최소한의 가치 수준을 견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물론 법도 사회적 합의의 변화에 따라 진화돼야 한다. 그러나 그 속도가 정치적 주장과 같이 빠를 수는 없다. 국정의 운영은 이러한 최소한의 도덕적 틀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법규범이 바로 도덕규범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법은 국민이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 또, 흔히 행정의 효율성을 이유로 하여 법을 경시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행정의 효율성과 법의 존중은 상호모순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존중 자체가 행정 효율성의 한 요소여야 한다. 왜냐하면 법을 매개로 하지 않고는 일관성 있게 공권력을 중립적으로 사용하여 공익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헌이니 뭐니 하는 형식논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라고 한 노 대통령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헌법 재판의 기능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존 로크에 따르면 최고의 정치적 권력은 입법권뿐으로, 행정권이나 사법권은 2차적 권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법권은 헌법기관들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해 그들 사이에 분배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행정부도 행정입법권을 향유하며, 헌법재판소도 위헌법률 심사를 통해 입법권을 행사한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률을 그대로 주권의사의 표현으로 간주하던 것은 프랑스 혁명기의 사상이다. 오늘날 헌법재판소에 의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 즉 ‘정치의 사법화’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더구나 헌법소원제도는 주권자인 국민 누구라도 행정부나 국회 등의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생각하면 헌법재판소를 통해 행정부나 국회 등의 위헌적 공권력 행사를 막을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수단이다.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법률 심사제도나 헌법소원 제도의 의의에 대한 애정있는 이해를 기대한다. 이광윤 (성균관대 교수·법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8. 2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