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늘리기'가 정부 혁신인가
	2005-08-01
'고위직 늘리기'가 정부 혁신인가 장차관급 지난 정부보다 22자리 늘어 정부는 최근 11명의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늘 하는 인사의 일단 같지만, 이번 인사의 특징은 행정자치부 등 4 부처의 복수차관제를 시행에 옮겼다는 것과 또 다시 통계청 등 몇 개의 1급 기관장을 차관급으로 승급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기관은 필요에 따라 늘고 줄고, 직위도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현 정부 혁신이 잘못된 것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혁신이 관료에 포획돼 있다는 점이고, 나머지는 정부혁신의 구도와 기본원리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개혁이 관료에 포획돼 있다는 증거는 이번 인사를 통해 확인된 것으로, 이 정부 들어 장차관급 직위가 무려 128개가 됐다는 사실이다. 장관급 37자리, 차관급 91자리를 합치면 지난 정부 때보다 모두 22자리가 늘어난 것이다. 정무직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1급 25, 2급 94, 3급 125 자리 등이 줄줄이 늘어나 몸집을 불리며 하는 혁신이 무슨 혁신인가 할 정도로 혁신 자체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관료란 승진과 좋은 자리를 추구하는 습성이 있는 집단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일상 관심사는 내가 언제 승진하고 내가 언제 바라는 자리에 가느냐이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관료제의 속성이다. 현정부는 초기에 관료집단을 크게 개혁할 듯이 소란을 피웠는데, 그 전제는 역대 정부의 관료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어느새 포획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개혁의 방식이 지극히 관료적이면서 이들의 욕구를 지나치게 충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를 보면 기관 하나 늘리는 데, 정무직 하나 늘리는 데 얼마나 인색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 정부는 기업의 알뜰경영을 표방하면서도 몸집을 줄이기는커녕 맘껏 늘리면서 관료들에게 인심을 쓰는 반경영적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혁신은 감량에 있지 않다”고 강변하기까지 한다. 이를 두고 정권이 관료에게 포획되지 않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정부혁신의 또 다른 잘못은 그 구도와 기본원리에 있다. 구도가 잘못된 좋은 예가 바로 행정자치부의 복수차관에서 발견된다. 복수차관제는 필자가 지난 1997년 대선이 한창 진행될 무렵 새 정부의 조직개편 방향을 제시하면서 복수기능이 있는 부서(건교부, 문광부, 산자부, 외교부, 재경부 등)에는 차관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논지를 편 적이 있다. 정부 수립 후 장면(張勉)의 내각책임제 정부 때 정무차관과 사무차관이 있은 적을 빼고 나면 대통령중심제 정부 형태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권한의 위임과 분산이라는 묘를 살려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했으면 하는 충정에서였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부서에 복수차관을 두는 대신 팀제로 전환한 행정자치부에 차관을 하나 더 둔다는 것은 바로 혁신 구도에 모순을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하면, 행정자치부는 앞장서서 실국장의 직위를 없애고 본부장 제도를 도입하고 부서를 팀제로 바꾸었다. 그것은 수평 조직을 지향하는 현대 정부의 변화 추세에 맞는 결단으로(단 사업부서나 기획부서에 맞는 팀제를 정부 집행부서에 도입했다는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전통적인 계급제를 지양하고 분업의 원리를 최대한 살려 조직의 성과를 높이자는 의도로 점수를 줄 만하다. 그렇지만 수평 조직을 지향하는 마당에 계급제의 전형인 수뇌의 자리를 더 늘릴 필요가 있겠는가? 행자부는 아마 정부혁신을 담당할 차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나, 이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정부혁신을 주도하는 대통령위원회가 있지 않은가? 더욱이 정부개혁은 정부 부서의 프랙털 차이(fractal distinction)에 따라 각 부서가 알아서 혁신을 주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한 부서가 맡아 혁신을 주도하면 ‘오리엔탈리즘의 모순 구조’에 빠져 버린다는 점을 누누이 지적받았을 것이다. 정무직은 미국 14명, 일본 19명, 영국 22명(내각 외 장관은 28명), 프랑스 23명, 중국 27명(장관급 위원장 9명)으로 우리보다 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나라의 정부도 우리 수준을 크게 웃돌지 않는다. 정부는 늦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혁신한 것 가운데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기능이 중복되는 정부기관을 조정하면서 관료제의 모순 때문에 국력이 낭비되는 것부터 꼼꼼히 따져 혁신을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현재 정부 관료의 언어·상징·태도·습관들로는 혁신을 백번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둔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前 중앙인사위원장) 출처 - 문화일보 2005. 8.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