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대학, 역할이 다르다
	2005-07-18
교육부와 대학, 역할이 다르다 오래전 농경사회에서는 산을 다스리고 물을 다스리는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정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강남의 부동산을 다스리고 서울대의 입시를 다스리는 일이야말로 정치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청와대발 ‘좋은 뉴스, 나쁜 뉴스’로부터 촉발된 서울대 통합형 논술고사 문제가 교육부와 열린우리당에 의해 강력한 제동이 걸리면서 서울대 총장과의 갈등은 청와대, 정부·여당의 구조를 넘어 정치권 범여·범야의 대결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시민단체와 언론사들의 목소리, 그리고 마침내 대학 자율권을 명분으로 한 서울대 교수협의회와 평의원회까지 대학입시에 대한 정치권의 관여에 섭섭함을 드러냈다. 드디어 우리 사회에 일파만파 번져가는 서울대 통합형 논술고사의 불길을 진압하기 위한 교육부총리의 담화문이 엊그제 발표됐다. 대입 논술고사의 사후 심의제를 도입하고 본고사형 논술을 치른 대학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이번 담화가 향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겠지만, 확정되지도 않은 일개 대학의 입시안을 놓고 우리 사회가 대처하는 방식은 그 도를 넘어 다분히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강남 집값을 올려놓았다는 세간의 질타에 민감해 있을 수밖에 없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대학입시 문제만큼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을 느낀 것처럼 세인들에게 비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아직까지 서울대가 의도하는 논술고사가 본고사의 성격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고, 또 교육부의 본고사와 논술고사의 판정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나서서 초전박살을 내겠다는 식의 과민반응을 보인 것은 신중치 못한 행동으로 비친다. 누가 뭐라 해도 서울대 총장의 가장 큰 책무는 서울대를 서울대답게 발전시키는 것이고, 서울대다운 것의 틀은 전적으로 그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순리라 여겨진다. 정작 교육부가 해야 할 보다 중요한 역할은 대학입시를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 입학 후 제대로 교육받고 있는지 학사 관리 감독권을 강화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여당과 청와대가 할 일은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제도를 개혁하는 일에 ‘올인’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사교육 죽이기가 곧 공교육 정상화란 착각도 문제지만, 특목고와 서울대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의 편향된 시각도 교정돼야 한다. 특목고 학생들은 누구이며 서울대 학생들은 누구란 말인가. 크게 보면 우리 모두가 키워 내야 할 인재들이고 우리 사회의 기대주가 아니겠는가. 물론 학생들의 과도한 대학입시 부담을 덜어주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를 줄여주는 일도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학교에서든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한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내신 중심의 대입제도 역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데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사실 한 가지는 국제 간 경쟁이 우리 한국의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고, 국제 경쟁력의 동력은 ‘획일화’와 ‘평준화’를 넘어 ‘다양성’과 ‘특성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전면전 선포’, ‘초동진압’, ‘결단코 저지할 것’, 그리고 ‘서울대를 손봐줘야 한다’는 정치권의 발언과 본고사형 논술을 치른 대학에 행정적·재정적 불이익을 주겠다는 담화문의 내용을 접하며 지금 대학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서울대니까 그만큼 버텨 내지 힘없는 사립대학들 같으면 어디 겁나서 입시제도 한번 맘 놓고 발표하겠는가”라고 말하는 요즘 대학가의 숨죽인 소리를 정치권이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성삼 (건국대 교수·부속고 교장·교육학) 출처 - 세계일보 2005. 7. 1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