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시대 외교분야의 RDA(Revolution in Diplomatic Affairs) 연구는 경제분야의 RBA(Revolution in Business Affairs) 연구나 군사분야의 RMA(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RBA가 1960년대이래 전개되고 있으며 RMA도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었던 데 반해 1990년대까지도 외교분야에서는 정보화가 지체되었던 현실이 이 분야의 연구가 부진한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정치의 '차세대혁명'으로서 RDA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은 외교업무에서 정보와 지식이 갖는 의미를 재고케 하였으며 더 나아가 외교의 내용과 형식을 양적·질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근대 외교의 기본전제들을 변화시킬 조짐마저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은 정보화시대 세계정치의 내용과 본질을 탐색하는 개념적 작업의 일환으로서 정보혁명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정보화시대 한국외교의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외교는 사용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쓰여지는 국제관계론의 개념 중의 하나이다.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외교는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전쟁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외교는 국제적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쟁해결을 위한 국제정치 과정으로서의 외교는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외교전략'이라는 말은 '국가전략'이나 '미래전략'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무관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의 정보화시대의 외교전략 또는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필자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 필자가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포괄적인 의미의 외교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된 외교의 개념이다. 이렇게 파악된 외교의 개념은 국가가 대외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책행위의 과정에서 채택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대외정책 수단으로서의 외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5세기 이태리에 그 기원을 두는 근대외교의 개념은 상주외교사절에 의한 정보수집, 정보보고, 대표, 협상, 영사업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는 그 이전의 전통적인 외교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것이다. 19세기까지도 효력이 유지되었던 근대외교는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상당한 변형을 겪게 되고, 최근에 이르러 세계화나 정보혁명이 진전되면서 그 기본적인 전제들이 변화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 서구 학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외교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외교(digital diplomacy), 버추얼외교(virtual diplomacy), 사이버외교(cyber diplomacy), 네트워크외교(network diplomacy), 정보화시대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촉매외교(catalytic diplomacy), 탈근대외교(postmodern diplomacy)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외교의 개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 개념들이 각기 다른 이론적 인식의 지평을 깔고 정보혁명과 외교의 중요한 단면들을 드러내 줌으로써 매우 유용한 정책적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 서구학계나 국내학계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연구들이 정보화시대 외교의 단편적인 특징에만 착안함으로써 다소 편협한 이론적 논의들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논의들은 RDA 연구의 일천한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개념적 재조정의 국면에 접어든 정보화시대의 외교를 21세기 세계정치 변화의 커다란 그림 안에서 입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정보화시대를 맞는 한국외교의 미래전략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정보혁명이 어떠한 맥락에서 외교의 형식과 내용에 새로운 변화를 촉발하였으며 앞으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이러한 변화가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이다. 이 글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정보혁명론 일반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보기술의 발달이 단순히 새로운 외교수단과 환경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심층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데 놓여 있다. 정보화시대의 외교 개념을 논함에 있어 전통적인 전쟁과 평화의 영역에서 국민국가의 공식 대표로서의 직업외교관들이 펼치는 외교과정의 변화만을 고찰하는 것은 왠지 미흡한 점이 많아 보인다.
정보화시대 외교 개념의 본질적인 측면을 밝히기 위해서는 단순한 외교협상의 수단과 형태 변화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세계정치 전반의 구조변화에 대한 질문, 즉 "정보화시대의 세계정치와 외교에서는 무엇이 목표이고 누가 행위주체인가?" 라는 문제에 대한 규명에서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세계정치의 주요 권력자원의 소재와 그 작동방식상의 변화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근대 국제정치를 지탱해온 국민국가체제의 양적·질적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보화시대의 외교개념은 전통적인 국제관계이론이 설정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목표와 행위자에 대한 이론적 테두리를 넘어서 21세기 세계정치의 새로운 목표와 행위자의 등장이라는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보화시대의 교를 개념화하고 한국외교의 전략적 방향 모색을 위한 기초적 논의를 제공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보화시대 외교의 개념은 정보혁명의 확산에 의하여 발생한 외교과정의 변화를 의미한다. 기존의 전신, 전화, 해저케이블 등의 도입이 외교과정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듯이 컴퓨터, 인터넷, 이동통신, 위성방송 등과 같은 정보혁명의 산물들도 정보의 수집이나 보고(report)와 같은 외교의 전통적인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외교업무의 처리방식이나 기타 외교관행들을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소위 '외교정보화'를 통해 외교주관부처의 범위를 넘어서 타 부처와의 업무공조를 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이러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외교정보를 공유하는 외교분야의 '지식경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외교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 차원에서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뉴스의 양적·질적 향상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외교부처의 업무를 크게 증진시켰다. 또한 인터넷은 정보수집의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외교적 홍보의 통로로서도 활용되어 웹사이트의 구축을 통하여 인터넷에 접속되는 곳이라면 어디의 누구에게라도 주요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편의성을 낳았다. 인터넷의 보급은 외교과정에 있어서 정보활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은 동시에 여기서 더 나아가 상주 해외공간의 필요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이버공간을 무대로 활약하는 '버추얼공관(virtual embassy)' 또는 버추얼외교의 가능성마저도 제기하고 있다. 사이버외교라는 개념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기술·정보·지식이 새로운 권력자원으로 등장하면서 외교영역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에 접어들어 외교의 영역은 전통적으로 '상위정치(high politics)'로 간주되던 전쟁과 평화의 분야를 넘어서 '하위정치(low politics)'로만 치부되던 분야들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보혁명이 진전되면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의 지적재산권 문제나 기술표준과 프로토콜에 관련된 국제협상 등의 문제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이슈로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정보·지식과 관련된 국제기구에서 활동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충원하는 것이 외교부처의 시급한 과제로서 인식되고 있다
정보기술과 관련된 기술협력이나 기술표준 및 국제규범 관련 협상의 문제가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외교영역으로서 등장하는 것과 함께 정보화는 문화와 가치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고 있다. 특히 글로벌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확산됨에 따라 문화적 요소들이 세계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으며, 외교의 대상과 영역도 전통적인 의미의 여론주도층으로부터 보다 넓은 의미의 국민 일반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대국의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국의) 비정부 민간행위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자국의 이해를 대변하고 홍보하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정보화시대에 이르러 더욱 부각되고 있다.
셋째, 정보혁명의 진전에 따라 외교는 그 행위주체의 측면에서도 변화를 겪고 있다. 정보기술의 도입과 외교영역의 전문화·세분화에 따라 외교조직에서의 위계적 구조가 수평적 구조로의 이행이 요구되는 동시에 정부내의 외교창구도 외교전담부처로부터 정부내의 모든 해당부처로 다원화되는 등 외교의 거버넌스 구조(governance structure)가 탈집중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화시대 외교전담부처의 역할과 위상은 특수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마련인 각 부처와 기관들을 국가 차원의 보편이해관계로 걸러내서 일관성을 부여하는 조정기능을 담당할 것이 예견된다.
또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더 이상 국가영역에만 배타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시민사회영역에서 비국가 행위자들을 엮어내는 네트워크외교의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과 사이버공간에서의 정보유통의 활성화가 이들 비국가 행위자들의 위상을 크게 제고시켰다. 예를 들어 비국가 행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기존에는 국가가 독점하던 첩보로만 취급되었을 고급기술정보들에 접근하게 되었으며,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초국가적 차원의 청중들을 상대로 온라인상의 출판과 방송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효과적인 수단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화시대 외교전담부처의 역할은 '공공정책 네트워크(public policy networks)'의 구성을 통해 이들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정하는 데 두어질 것이 요청된다.
요컨대, 정보화시대를 맞아 벌어지는 세계정치의 구조변화라는 상황하에서 근대적인 형태의 외교가 일정정도의 자기변화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인 외교의 형태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식의 전망은 금물이다. 기술의 발전에 적응하여 외교의 위상과 역할이 끊임없이 재조정되어 왔듯이 정보혁명의 시대를 맞아서도 외교는 개념적·현실적 재조정의 과정을 거쳐서 자기 모습을 찾아갈 것으로 예견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국제관계론에서 '외교'라는 개념으로 지칭해온 기능이 세계정치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새롭게 등장하게 될 정보화시대 외교는 그 영역과 주체의 측면에서 기존의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대내외적인 차원에서 보다 넒은 영역의 이슈들을 포괄하여야 하며 보다 많은 행위자들을 엮어내는 조정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정보화시대 외교의 변화를 논함에 있어 한국외교의 시각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이 분야의 변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일면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의 많은 정보기술이 미국의 기업과 정부의 연구기관에 의해 개발되었고, 정보산업의 부상과 디지털경제의 도래도 미국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또한 군사안보 분야에 정보혁명의 산물을 도입하는 데 앞서고 있는 것도 미국이며, 이러한 정보화의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보화시대의 문화 분야에서 소위 연성권력(soft power)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미국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우세를 바탕으로 군사,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외교 분야에서도 자신들의 구상(ideas)에 입각해서 자신들의 이해(interests)를 반영하는 새로운 제도(institutions)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외교가 정보화시대의 도래라는 새로운 구조변화에 제대로 대응해야 하는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보화시대의 외교
정보화시대 외교분야의 RDA(Revolution in Diplomatic Affairs) 연구는 경제분야의 RBA(Revolution in Business Affairs) 연구나 군사분야의 RMA(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RBA가 1960년대이래 전개되고 있으며 RMA도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었던 데 반해 1990년대까지도 외교분야에서는 정보화가 지체되었던 현실이 이 분야의 연구가 부진한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정치의 '차세대혁명'으로서 RDA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은 외교업무에서 정보와 지식이 갖는 의미를 재고케 하였으며 더 나아가 외교의 내용과 형식을 양적·질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근대 외교의 기본전제들을 변화시킬 조짐마저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은 정보화시대 세계정치의 내용과 본질을 탐색하는 개념적 작업의 일환으로서 정보혁명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정보화시대 한국외교의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외교는 사용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쓰여지는 국제관계론의 개념 중의 하나이다.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외교는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전쟁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외교는 국제적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쟁해결을 위한 국제정치 과정으로서의 외교는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외교전략'이라는 말은 '국가전략'이나 '미래전략'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무관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의 정보화시대의 외교전략 또는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필자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 필자가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포괄적인 의미의 외교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된 외교의 개념이다. 이렇게 파악된 외교의 개념은 국가가 대외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책행위의 과정에서 채택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대외정책 수단으로서의 외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5세기 이태리에 그 기원을 두는 근대외교의 개념은 상주외교사절에 의한 정보수집, 정보보고, 대표, 협상, 영사업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는 그 이전의 전통적인 외교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것이다. 19세기까지도 효력이 유지되었던 근대외교는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상당한 변형을 겪게 되고, 최근에 이르러 세계화나 정보혁명이 진전되면서 그 기본적인 전제들이 변화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 서구 학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외교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외교(digital diplomacy), 버추얼외교(virtual diplomacy), 사이버외교(cyber diplomacy), 네트워크외교(network diplomacy), 정보화시대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촉매외교(catalytic diplomacy), 탈근대외교(postmodern diplomacy)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외교의 개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 개념들이 각기 다른 이론적 인식의 지평을 깔고 정보혁명과 외교의 중요한 단면들을 드러내 줌으로써 매우 유용한 정책적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이 있다면 서구학계나 국내학계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연구들이 정보화시대 외교의 단편적인 특징에만 착안함으로써 다소 편협한 이론적 논의들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논의들은 RDA 연구의 일천한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개념적 재조정의 국면에 접어든 정보화시대의 외교를 21세기 세계정치 변화의 커다란 그림 안에서 입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정보화시대를 맞는 한국외교의 미래전략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정보혁명이 어떠한 맥락에서 외교의 형식과 내용에 새로운 변화를 촉발하였으며 앞으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이러한 변화가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이다. 이 글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정보혁명론 일반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보기술의 발달이 단순히 새로운 외교수단과 환경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심층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데 놓여 있다. 정보화시대의 외교 개념을 논함에 있어 전통적인 전쟁과 평화의 영역에서 국민국가의 공식 대표로서의 직업외교관들이 펼치는 외교과정의 변화만을 고찰하는 것은 왠지 미흡한 점이 많아 보인다.
정보화시대 외교 개념의 본질적인 측면을 밝히기 위해서는 단순한 외교협상의 수단과 형태 변화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세계정치 전반의 구조변화에 대한 질문, 즉 "정보화시대의 세계정치와 외교에서는 무엇이 목표이고 누가 행위주체인가?" 라는 문제에 대한 규명에서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세계정치의 주요 권력자원의 소재와 그 작동방식상의 변화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근대 국제정치를 지탱해온 국민국가체제의 양적·질적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보화시대의 외교개념은 전통적인 국제관계이론이 설정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목표와 행위자에 대한 이론적 테두리를 넘어서 21세기 세계정치의 새로운 목표와 행위자의 등장이라는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보화시대의 교를 개념화하고 한국외교의 전략적 방향 모색을 위한 기초적 논의를 제공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보화시대 외교의 개념은 정보혁명의 확산에 의하여 발생한 외교과정의 변화를 의미한다. 기존의 전신, 전화, 해저케이블 등의 도입이 외교과정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듯이 컴퓨터, 인터넷, 이동통신, 위성방송 등과 같은 정보혁명의 산물들도 정보의 수집이나 보고(report)와 같은 외교의 전통적인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외교업무의 처리방식이나 기타 외교관행들을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소위 '외교정보화'를 통해 외교주관부처의 범위를 넘어서 타 부처와의 업무공조를 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이러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외교정보를 공유하는 외교분야의 '지식경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외교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 차원에서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뉴스의 양적·질적 향상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외교부처의 업무를 크게 증진시켰다. 또한 인터넷은 정보수집의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외교적 홍보의 통로로서도 활용되어 웹사이트의 구축을 통하여 인터넷에 접속되는 곳이라면 어디의 누구에게라도 주요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편의성을 낳았다. 인터넷의 보급은 외교과정에 있어서 정보활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은 동시에 여기서 더 나아가 상주 해외공간의 필요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이버공간을 무대로 활약하는 '버추얼공관(virtual embassy)' 또는 버추얼외교의 가능성마저도 제기하고 있다. 사이버외교라는 개념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기술·정보·지식이 새로운 권력자원으로 등장하면서 외교영역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에 접어들어 외교의 영역은 전통적으로 '상위정치(high politics)'로 간주되던 전쟁과 평화의 분야를 넘어서 '하위정치(low politics)'로만 치부되던 분야들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보혁명이 진전되면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의 지적재산권 문제나 기술표준과 프로토콜에 관련된 국제협상 등의 문제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이슈로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정보·지식과 관련된 국제기구에서 활동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충원하는 것이 외교부처의 시급한 과제로서 인식되고 있다
정보기술과 관련된 기술협력이나 기술표준 및 국제규범 관련 협상의 문제가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외교영역으로서 등장하는 것과 함께 정보화는 문화와 가치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고 있다. 특히 글로벌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확산됨에 따라 문화적 요소들이 세계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으며, 외교의 대상과 영역도 전통적인 의미의 여론주도층으로부터 보다 넓은 의미의 국민 일반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대국의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국의) 비정부 민간행위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자국의 이해를 대변하고 홍보하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정보화시대에 이르러 더욱 부각되고 있다.
셋째, 정보혁명의 진전에 따라 외교는 그 행위주체의 측면에서도 변화를 겪고 있다. 정보기술의 도입과 외교영역의 전문화·세분화에 따라 외교조직에서의 위계적 구조가 수평적 구조로의 이행이 요구되는 동시에 정부내의 외교창구도 외교전담부처로부터 정부내의 모든 해당부처로 다원화되는 등 외교의 거버넌스 구조(governance structure)가 탈집중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화시대 외교전담부처의 역할과 위상은 특수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마련인 각 부처와 기관들을 국가 차원의 보편이해관계로 걸러내서 일관성을 부여하는 조정기능을 담당할 것이 예견된다.
또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더 이상 국가영역에만 배타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시민사회영역에서 비국가 행위자들을 엮어내는 네트워크외교의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과 사이버공간에서의 정보유통의 활성화가 이들 비국가 행위자들의 위상을 크게 제고시켰다. 예를 들어 비국가 행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기존에는 국가가 독점하던 첩보로만 취급되었을 고급기술정보들에 접근하게 되었으며,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초국가적 차원의 청중들을 상대로 온라인상의 출판과 방송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효과적인 수단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화시대 외교전담부처의 역할은 '공공정책 네트워크(public policy networks)'의 구성을 통해 이들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정하는 데 두어질 것이 요청된다.
요컨대, 정보화시대를 맞아 벌어지는 세계정치의 구조변화라는 상황하에서 근대적인 형태의 외교가 일정정도의 자기변화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인 외교의 형태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식의 전망은 금물이다. 기술의 발전에 적응하여 외교의 위상과 역할이 끊임없이 재조정되어 왔듯이 정보혁명의 시대를 맞아서도 외교는 개념적·현실적 재조정의 과정을 거쳐서 자기 모습을 찾아갈 것으로 예견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국제관계론에서 '외교'라는 개념으로 지칭해온 기능이 세계정치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새롭게 등장하게 될 정보화시대 외교는 그 영역과 주체의 측면에서 기존의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정보화시대의 외교는 대내외적인 차원에서 보다 넒은 영역의 이슈들을 포괄하여야 하며 보다 많은 행위자들을 엮어내는 조정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정보화시대 외교의 변화를 논함에 있어 한국외교의 시각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이 분야의 변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일면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의 많은 정보기술이 미국의 기업과 정부의 연구기관에 의해 개발되었고, 정보산업의 부상과 디지털경제의 도래도 미국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또한 군사안보 분야에 정보혁명의 산물을 도입하는 데 앞서고 있는 것도 미국이며, 이러한 정보화의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보화시대의 문화 분야에서 소위 연성권력(soft power)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미국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우세를 바탕으로 군사,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외교 분야에서도 자신들의 구상(ideas)에 입각해서 자신들의 이해(interests)를 반영하는 새로운 제도(institutions)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외교가 정보화시대의 도래라는 새로운 구조변화에 제대로 대응해야 하는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상배 (미래전략연구원)
출처 - 미래전략연구원 2002.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