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강제조사권 부여 안된다
	2005-05-12
공정위 강제조사권 부여 안된다 부패방지위원회가 기업의 부패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기업에 대해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더니, 이제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강제조사권을 갖겠다고 나섰다. 기업의 불법 부정행위를 규제하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정부 위원회가 사법적 권한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예사롭지 않으며, 그 배후에 어떤 복선이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공정위가 몇몇 기업이 조사에 순순히 응하지 않은 사례를 들어 강제조사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당치 않은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공정위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반(反) 독점기구도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장조사권, 계좌추적권, 자료제출 요구권에다 과징금 부과권까지 갖고 있는 공정위가 이제 강제조사권까지 갖게 되면 실로 대단한 권력기관이 될 것임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벌금 100만원을 부과하기 위해서도 검찰이 기소해서 법원이 판결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위는 10억원이니 얼마니 하는 막대한 과징금을 쉽게 부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징금을 부과 받은 기업은 불복할 경우 소송을 제기해서 다투는 수밖에 없으니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위협인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비율이 50%나 된다 하니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고 있는 사례가 많음을 보여준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이 사실상 형벌로서 기능하고 있어,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정부의 여러 부처가 사법경찰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 그들이 강제조사권을 갖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이 정하는 규범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 많아 법 집행이 자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 소지가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공정거래법은 엄격한 항구적인 법원칙에 의하기보다는 권력의 의지에 따라 재량적으로 운영되는 성향이 있다. 공정위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할 경우 기업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도 바로 이 때문다. 공정거래법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독점금지법이 시대착오적인 산물이라면서 이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마저 일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일찍이 “(미국의 공정거래법은) 경제적으로 불합리하고 무식한 허섭쓰레기”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우리 법이라고 해서 그런 비판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정보화 하이테크 시대에 시장을 이끌어가는 것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가설에 서 있는 공정거래법이 과연 이 시대에 있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공정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우리 정부의 인식은 이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공정위에 강제조사권를 주자는 주장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현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서 신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강제조사권을 갖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모호한 법 조항을 근거로 신문사를 강제 수색하고 과징금을 물리는 사태가 온다면 그것은 바로 언론 탄압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더라도 강제조사권을 가진 공정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문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1930년대 미국에 대공황이 닥쳐오자 루스벨트 행정부는 대기업들이 경제 난국을 초래했다고 생각해서, 사회주의에 물든 법률가들을 대거 기용해서 기업을 상대로 반(反)독점 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했다. 기업들은 투자를 기피했고, 그 결과로 공황이 더욱 심해져서 온 국민이 극심한 고통을 당했다. 요즘 공정위가 하는 일을 보면 시장과 기업을 적대시했던 뉴딜시대의 악령(惡靈)을 보는 듯 하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5. 1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