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분리(首都分離)도 위헌
	2005-02-25
수도분리(首都分離)도 위헌 국회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거듭 저지르고 있다. 수도이전법에 야합했다가 위헌결정을 받은 것이 엊그제인데 이번에는 수도분리법의 흥정에 여야가 합의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입법부, 사법부를 남기기로 했으니 위헌은 아니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행정부처의 대부분이 옮겨간다면 그것은 명백한 수도분리다. 수도를 옮기는 것이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흔드는 막중지대사라면, 그것을 쪼개어 갈라놓는 것은 그보다 더 위중한 일이다 국정운영 비효율성 불 보듯 전후관계를 살피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공주.연기 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이라는 장황한 이름이 되레 궁색하다. 지난번 수도이전법은 지역이기주의를 겨냥, 선거에서 재미본 여당의 책략에 야당이 부화뇌동한 결과였다. 이번에는 거기에 위헌결정으로 드러난 정책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술책이 더해졌다. 국사를 농단하는 편법으로 세상을 속이려 하고 있지만 국민은 그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 이 어릿광대 놀음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손으로 뽑은 선량들이 하는 짓이기 때문이요,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것이 여기에 우리의 생존과 후손의 운명이 걸린 때문이다.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그것도 입법기관에 의해 헌정질서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목도하고 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수도이전법이 위헌이듯, 졸속으로 만들어낸 수도분리법도 헌법에 배치되기는 다를 것이 없다. 현 시점에서 수도이전은 통일을 내다보지 않고, 역사와 국가 정통성을 팽개치고, 세계화 흐름과 민생에 거스르는 일이다. 허허벌판에 품격없는 신도시를 만들어 보았자 결국 수도권의 평면적 확대만 초래한다. 그런데 수도분리는 국정운영의 비효율성이라는 짐을 더 지운다. 수도권 외곽에 재정을 쏟아부어 기능적으로 서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신도시를 만들었다고 치자. 그런 도시가 자생력을 가지고 수도권 집중을 견제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국가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의사결정 과정에 위기가 닥칠 것이다. 국무회의는 수없이 많은 부처 간 협의의 하나일 뿐이다. 서울에 남은 국회.민간 기업.외국 공관들과의 업무는 어떻게 하나. 공간은 시간이고, 시간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그래서 집중시키는 것이다. 종족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수도를 셋으로 분리했던 남아공에서도 수도통합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도 동.서독 통일 후 베를린으로 천도하면서 옛 수도 본의 안정을 위해 연구.교육 기능 등 일부만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이처럼 수도분리란 예외적인 고육지책이지, 멀쩡한 나라가 정략으로 한번 해보는 것이 아니다. 수도이전보다 더 위중한 일 충청권 대책은 정책실패에 따른 피해보상과 국토계획상 지역개발의 문제로 수도입지와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국토 균형발전은 국가 발전전략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상해야 한다. 필자는 수도권의 카운터 폴로 남해안 벨트를 개발, 낙후 지역에 미래형 산업을 육성하고 국토를 해양 지향적 개방구조로 개편하자는 제안을 해놓은 바 있다. 그나저나 대의와 명분을 저버렸으니 이제 나라를 무엇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신뢰는 잘못을 덮거나 우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솔직히 시인하는 데서 싹튼다. 개혁의 이름으로 국가를 배신하지 말고, 상생의 이름으로 대의를 저버리지 말라. 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잠시 덮을 수는 있겠지만 진실은 머지않아 다시 시퍼렇게 살아날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과거사 청산한다고 법석떨지 않으려거든 이제라도 감은 눈을 뜨고 미래와 세계를 직시하라. 유우익 (서울대 교수.세계지리학연합회 부회장) 출처 - 중앙일보 2005. 2. 2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