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 선언과 북한의 속뜻
	2005-02-11
'핵 보유' 선언과 북한의 속뜻 어제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6자회담 무기 연기' 및 '핵 보유' 선언은 설날 휴무를 즐기던 많은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이는 전문가들이 예상해 온 세 가지 핵 선택 중 북한이 최강수를 택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북핵문제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됐으며, 핵문제는 미국의 대응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미 대응 따라 천국 지옥 오갈 수도 그동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압박과 미소'라는 강온전략으로 대화에 나올 것을 북한에 요구해 왔다. 북한을 자극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2월 2일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이 '미소'에 해당한다면, 하루 전날 미국 언론들이 '북한의 육불화우라늄 리비아 판매'를 폭로한 것이나 1월 21일 재취임 연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한 것은 '압박'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전문가들은 이제는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해 무언가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순서가 됐다고 봤다. 북한이 대화 기피의 명분으로 삼았던 미국 대선도 끝났고,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도 정비됐으며, 부시 대통령의 재취임 연설과 연두 국정연설도 발표됐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세 가지 시나리오는 대략 이랬다. 첫째는 '6자회담 개최 및 잠정적 핵 해결'이었다. 북한이 리비아식 고백 및 핵 프로그램 자진해체를 택하기는 어려워도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하는 핵 동결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경우다. 둘째는 파국을 피하면서 좀더 시간을 끄는 경우다. 하지만 6자회담을 개최하든 안 하든 해결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것은 미국이 방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무기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면돌파 시나리오다. 북한이 외부의 압박을 뿌리치는 수단으로 핵실험이나 공식 선언을 통해 공개 핵보유국이 되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이 길을 걷고 있다. 이 방식이 북한이 원하는 효과를 나타낼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나 공이 다시 미국의 코트에 넘어간 이상 이제는 미국의 대응을 주목해야 할 순서가 됐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 선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한 관리들의 핵 보유 언급에 대해 그랬듯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대화 노력을 지속할 수 있으며, 아니면 북한이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하고 곧바로 다음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유엔 안보리, 반확산안보구상(PSI)의 본격 실행 등 강경책을 발동하는 것이다. 핵 전략 이론에 비춰본다면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은 '정치적 문턱'을 넘은 것에 해당한다.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 공개하지 않으면서 냄새만 피우는 것은 '기술적 문턱'만 넘은 경우로, 필요하면 핵 보유를 부인할 수도 있고 국제제재를 피할 명분도 포기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핵실험이나 공식 핵 보유 선언은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제제재를 무릅쓰겠다는 자세로 지금부터 북핵을 둘러싼 국제정치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시나리오 선회, 북에 달려 이제부터 세계는 앞으로 전개될 미.북 간 핵 대결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한 마당에서도 북한이 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시나리오로의 선회가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북한 정부가 자국민의 인권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자세만 갖는다면 문제는 풀릴 수 있다. 국민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굳이 자국민을 극심한 인권 부재의 상황 속에 가두고 외부와의 단절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로 미국과 대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선언만을 놓고 본다면 북한이 아직은 반대쪽의 선택을 중시하는 것 같다. 모순되는 체제와 정권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삶의 질은 물론 더한 것도 희생할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한 북핵문제는 쉽사리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 출처 - 중앙일보 2005. 2.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