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失業)을 풀어나가는 길
	2005-02-11
청년실업(失業)을 풀어나가는 길 오늘날 우리 인류를 가장 불안케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노동의 미래다. 어느 나라건 다양한 일자리 창출 대책을 세우지만 뾰족한 것을 찾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단시간 내에 ‘압축 성장’을 이룩한 경우 고용문제 역시 동시다발(同時多發)로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고령인구 취업 등 어느 하나도 쉬운 게 없다. 문제의 핵심은 지구적 수준에서도 설득력 있는 대안을 선뜻 내놓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파는 성장에 따른 고용효과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의 확대다. ‘구조조정’이란 그럴싸한 말에 감춰진 또 다른 의미는 ‘대량해고’에 다름 아니다. 좌파 정책 역시 큰 차이가 없다. 노동시간 단축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그 효과는 프랑스 사례에서 보듯이 미미한 편이다. 좌파의 트레이드 마크인 ‘완전고용’의 꿈은 이제는 지나간 황금시대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서로에 대한 비판은 빛을 발하지만, 돌아서면 대안 부재의 고뇌가 갈수록 깊어진다. 원인은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도래다. 세계 노동력의 3분의 1이 과잉이라는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의 주장은 다소 과장됐더라도, 정보화가 ‘고용 없는 성장’을 강화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고용의 미래가 불안한 만큼 노사 간 타협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실업의 공포가 사회통합의 기반을 뒤흔든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노동의 우울한 미래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청년실업 문제는 이런 총론과 직접 연관돼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한 청년을 위한 일자리 역시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경력직을 우선시하는 노동시장의 변화,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는 고학력화, 대학교육과 노동시장 수요의 불일치 등 여러 요인들이 맞물려 있다. 게다가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대기업 선호 현상을 강화하고 적지 않은 ‘대기 실업자’를 낳고 있다. 2004년 12월 현재 청년실업자는 42만명,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2배에 달하는 8.4%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청년실업률이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높은 편은 아니다. 문제는, 경제 수준이 다르고 복지수준이 다르다는 점에서 개인적·사회적 파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걸고 취업에 다시 모든 것을 거는 우리 삶의 방식에 청년실업은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 원인이 복잡다단한 만큼 해법 또한 다각적이어야 한다. 먼저 구조적 원인과 상황적 원인에 대한 동시 대응이 요구된다. 세계화는 성장이 고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대응을 불허한다. IT·서비스를 포함해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부문을 집중 육성하는 동시에 노동계가 제안한 일자리 나누기 대타협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구인(求人)과 구직(求職)의 연관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점진적으로 해소해 중소기업 취업을 높이고 대학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대학교육을 노동시장 수요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적자원의 효율적인 개발을 위한 대학의 자기 개혁이 요구되며, 이를 위한 적극적인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얼마 전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503대1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포털 사이트가 조사한 결과 올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의 1위가 ‘청년실업 0%’였다고 한다. 졸업은 하지만 갈 곳 몰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정부, 기업, 대학, 그리고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공동대응과 역사적 대타협이 요청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5. 2.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