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조 달라져야 한다
	2005-01-31
대기업 노조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떨어지고 있지만 대기업 노동조합의 힘은 여전히 무소불위이다. 최근 기아자동차노조의 채용 비리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면서 노조의 지나친 경영 참여 등 우려를 지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특히, 공장 이전, 새로운 설비의 도입, 신기술 도입, 신차종 개발까지도 노조가 반대하면 할 수 없도록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는 일부 ‘귀족 노조’도 있다고 한다. 이번 기아차노조 사태와 관련, 민주노총은 초기의 ‘유감’ 수준에서 ‘심심한 사과와 대오각성’으로 대 국민 담화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노총이 국회에 입성하고 김대중정권 이래 친노조 성향을 보인 것이 이런 결과를 오히려 부채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경제 민주화는 이익배분 과정에 대한 참여이고, 산업 민주화는 의사결정에서의 참여 과정을 일컫는다. 물론 노사간 정보 공유가 잘 이뤄지고 종업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적정 수준으로 참여하는 것은 애사심과 동기 유발을 높여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산업 평화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정도를 넘는 노조의 경영 참여는 기업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날 노조의 역할은 힘이 약한 개별 종업원을 대신하여 목소리(voice)를 냄으로써 이직(exit)을 줄이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그러나 경영 환경이 많이 변한 오늘의 시점에서 노동조합이 근로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은, 회사가 업종 전환 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이 불가피한 경우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고 배치·전환을 권고하고 이에 협조하는 것이다. 이 배치·전환까지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할 상황이라면 노조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는 노·사 문제에 관한 한 독일을 벤치마킹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독일과 영국 중 어느 나라의 노사관계가 잘 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5~6차례에 걸쳐 노동법 개혁을 실시한 결과 거센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영국은 대처 총리 집권 기간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도 독일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조건을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임금은 노사가 교섭하여 결정하고, 이 임금 수준 속에서 사용자는 적정 고용 수준을 단독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나라를 본받는 것이 우리의 여건에서 현명한 선택일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한경쟁 시대에 노사 어느 일방에만 유리한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다가는 머잖아 국제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요구로 다수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질문에 동의하는 비율이 32.2%로 나타났다. 또, “고임금 사업장에서의 노사분규는 자제돼야 한다”는 33.0%,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격차 완화를 위해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29.5%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이처럼 ‘귀족 노조’에 대해 우리 근로자들은 상당히 관대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귀족 노조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시각은 결코 곱지만은 않다. 정부도 이 점을 인식, 노조의 지나친 경영 참여와 불법 파업 등으로 인해 경제 성장의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정책 방향을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주말 신문에 보도된 현대중공업 노조의 거래선에 대한 ‘감사의 편지’는 노사관계의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정치권 일각에서도 노조의 지나친 경영 참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제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모색해야 한다. 현 노동위원회 제도보다는 노동법원의 설립이 바람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재원 (한양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5. 1. 3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