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투명해야 기업도 투명
	2005-01-31
사회가 투명해야 기업도 투명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를 집단소송 대상에서 2년간 유예해 주겠다는 이해찬 총리의 최근 발언은 집단소송제의 시행을 앞둔 재계의 고민을 일정부분 해소해 주기 위한 것이다. 과거 분식은 법을 개정해서라도 일정기간 면탈해 주고 새로운 분식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법 개정의 추진 및 범위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총리의 발언은 경제현실과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고 실효성 있게 실시될 경우 기업의 건전경영이 촉진되고 신용도가 높아져서 주가도 오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되는 등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기업의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등으로 손해를 본 주주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내서 이기면 소송을 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보상을 받는다. 피해보상 범위와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소송에 질 경우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설령 기업이 패소하지 않더라도 소송에 휘말리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경영자원의 낭비일 뿐 아니라 기업신뢰도 저하 등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 제도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남소방지가 주요 과제이다. 남소에 따른 피해가 과도할 경우 집단소송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제도는 내년에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79개사를 대상으로 하고 내후년부터는 모든 상장, 등록법인으로 확대실시된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에 분식회계를 하지 않은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분식회계는 이런저런 사유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모든 기업이 관행처럼 해왔다. 물론 분식회계는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그러나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유예 등 보완조치 없이 집단소송제가 실시될 경우 남소가 조장될 우려가 있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소송에 휘말려 막대한 비용부담은 물론 경제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결과 다수의 기업이 쓰러지고 경제가 더욱 어렵게 된다면 경영의 투명성과 주주의 권익도 무의미하다. 기업의 원죄를 단죄한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원리주의는 남소를 조장해서 오히려 집단소송제 실시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비교적 분식회계 문제가 없는 미국에서조차 남소에 따른 피해가 커지면서 집단소송제를 완화하는 추세이다. 이 총리가 과거분식에 대해 일정기간 면탈해 주겠다는 것은 실제로 집단소송제의 성공적인 도입을 통해 앞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감독위원회가 기업들이 올해 결산에서 전기(前期)오류 수정을 통해서 과거분식을 고칠 수 있게 하고 회계감리를 면제해 민형사상 책임을 경감해주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합리적인 조치라고 본다. 이 총리는 기업의 분식회계 문제와 함께 노조의 자기혁신 노력도 강조했다. 사실 노조뿐 아니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기업들은 분식회계를 통해서 비자금을 조성해 왔지만 그런 경우 기업뿐 아니라 노조와 정치권 등도 분식회계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노조가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조 스스로도 투명성의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노조의 무리한 투쟁이 기업의 투명경영을 저해해온 측면도 없지 않다. 이런 문제는 정치권 및 정부의 부정부패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 국제전문기관의 평가이다. 따라서 부정부패의 온상인 정부의 규제와 간섭도 줄여야 한다. 부패지수가 높고 경제의 자유도가 낮은 것이 궁극적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열악한 기업환경에서 살아남은 기업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기업만의 노력으로 투명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조와 정치권 그리고 정부도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정치·사회·경제가 모두 투명하고 선진화돼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는 개혁이 추진될 때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우리나라도 선진경제, 선진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집단소송제도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되 비용과 효과 면에서 보다 실용적·효율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출처 - 세계일보 2005. 1. 3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