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세계는 지금 '문명사적 전환'으로 지칭되는 격변기에 돌입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 내지 지적 활동에 대한 의존도가 격증하는 지식기반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망은 1970년대 초 다니엘 벨이 『후 산업사회의 도래』라는 저서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대응한 '지식가치설'을 제기하면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러스터 써로우나 피터 드러커 등 지식경영론자들의 주장을 통해 이론화되고, 각국의 IT산업의 발전과 지식정보화의 진전으로 광범위하게 입증되고 있다.
지식은 점유자가 누구냐에 따라 공공지(public knowledge)와 사유지(private knowledge)로 구분되며, 공식지(formal knowledge)와 실용지(practical knowledge),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 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최근 사회화-외부화-조합화-내면화와 같은 일련의 순환과정에 의거해 지식범주들간의 융합적 발전을 상정하는 지식진화 모형이나 이론들이 속출하면서, 지적 단절이나 편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창의적 지식과 그 활용 여부가 사회변혁의 핵심요소로 대두되며, 개인·조직·국가의 번영은 지적 우열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현 정부는 지식기반사회를 국가발전의 핵심목표로 설정하고, 쓸모 있는 지식을 우대한다는 명목 아래 "학력과 관계없이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발상이나 기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을 '新지식인'으로 부각시켰다.
신지식인론은 한국사회의 고질적 학력중심주의를 배제하고, 사변적·추상적 지식에 관한 지적 편향을 타파함으로써, 무한경쟁시대에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속적, 균형적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넘어선 보다 넓은 의미의 사회적 부가가치 산출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목전의 돈벌이와 직결된 편협한 공리주의적 지식관은 배격되어야 한다.
향후 선후진국간의 격차는 지식격차로 귀착될 것이며, 지식기반이 취약한 국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진단은 기본적으로 옳다. 따라서 향후 생산요소의 핵심으로 대두할 지력 향상에 매진하자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합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新지식인론은 원래 의도와는 달리 돈벌이를 일차적 목표로 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비생산적 존재로 매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지식인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고, 원리중심의 기초지식과 학문에 대한 성장을 저해하며, 성찰적·비판적 사유를 억압함으로써 최근 이삼년간 우리 사회에 심각한 반(反)지성적 분위기를 조장해 왔다.
"얄팍한 지식 장돌뱅이"를 국가적 영웅으로 미화시키는 新지식 드라이브는 인류역사의 행로를 선도할 원대한 사상이나 관념의 생성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거시적 안목, 수단, 가치 등을 강구할 수 있는 지적 통찰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신지식인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추진된 정부의 '두뇌한국'(BK21) 프로그램과 기초학문 분야 경시, 과학자ㆍ교수ㆍ의사ㆍ약사ㆍ변호사ㆍ교사 등 고유한 전문직역에 대한 파괴 및 대중화 운동, 학문연구 경시, 전문가와 지식인에 대한 격하 등은 지식정보화의 진전과 더불어 심히 우려할 만한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은 한국의 전문지식인들의 자긍심과 위상을 훼손시켜 지식정보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창의성과 전문성을 생명으로 하는 이들을 한낱 전문기술자나 지식중개상으로 전락시키는 크나 큰 위험을 낳고 있다. 의료분쟁에서의 의사와 약사, BK21ㆍ학부제ㆍ연봉제ㆍ교수노조를 둘러싼 교수, 사법개혁과정에서의 변호사, 정년단축과 공교육 파괴과정의 교사 등 전문지식인의 모습은 '떠오르는 신지식인'과 대비하여 '추락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확대시키고 있다. 따라서 바른 지식기반사회의 구축을 향한 국가적 노력이 실효성 있는 정책적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선,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긴요하다.
첫째, 지식이란 잔머리를 돌려 순간의 이익을 간취하는 단순기법에 불과하다는 경박한 지식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오랜 노력과 연공의 산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IMF 위기극복의 첨병으로 칭송되던 요리배달부, 춤꾼, 유치원업자, SF영화제작자 등이 경제회생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공적을 회고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신지식인 운동은 기존의 지식체계가 실용적 가치를 결여한 죽은 지식으로 전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식세계와 일상세계를 중계하며 "기초지식의 실용화와 실무지식의 체계화"를 담당할 지적 소통망을 강화함으로써 지적 융합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구조를 확장하는 일이 긴요하다.
셋째, 신지식인론은 기본적으로 암묵지의 담지자인 개인의 지력 향상을 우선시 한다. 하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가치를 발하는 무한가치성을 본원적 속성으로 하는 지식은 개개인의 수준을 넘어선 사회적 자원으로 전화될 때 그 효용성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지식의 공유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합리적 준칙·보상체계·규범·가치관을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넷째, 지식생산고의 증가와 더불어 지식정보의 범람, 파편화 및 무분별한 조합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분화와 통합"으로 요약되는 거시적 사회변동을 통시할 수 있는 총체적 사고력의 성장을 저해한다. 따라서 목전의 작은 이익을 초월해 메타사회학적 동향, 징표, 쟁점, 전망 등을 탐지할 수 있는 학습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자유경쟁의 논리라는 미명 아래 학부제, 연봉제 등을 내세우며 대학사회에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관제 교육개혁은 재고되어야 한다.
요컨대, 신지식인 운동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출세한 사람만을 우대하는 성공지상주의적 사고를 확산시킴으로써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모순과 더불어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하나의 우화로서 귀결되어가는 신(新)지식인 신화는 엄정한 자성을 통해 재평가되어야 하며, 사회적 거품을 제거하는 의식운동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기반사회의 주변인으로 전락하는 전문지식인이 주체로 당당히 다시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지식인 운동이 문화혁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를 만든 중국의 역사적 교훈을 일깨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지식인'을 넘어, 바른 지식기반사회로 가자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세계는 지금 '문명사적 전환'으로 지칭되는 격변기에 돌입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 내지 지적 활동에 대한 의존도가 격증하는 지식기반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망은 1970년대 초 다니엘 벨이 『후 산업사회의 도래』라는 저서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대응한 '지식가치설'을 제기하면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러스터 써로우나 피터 드러커 등 지식경영론자들의 주장을 통해 이론화되고, 각국의 IT산업의 발전과 지식정보화의 진전으로 광범위하게 입증되고 있다.
지식은 점유자가 누구냐에 따라 공공지(public knowledge)와 사유지(private knowledge)로 구분되며, 공식지(formal knowledge)와 실용지(practical knowledge),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 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최근 사회화-외부화-조합화-내면화와 같은 일련의 순환과정에 의거해 지식범주들간의 융합적 발전을 상정하는 지식진화 모형이나 이론들이 속출하면서, 지적 단절이나 편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창의적 지식과 그 활용 여부가 사회변혁의 핵심요소로 대두되며, 개인·조직·국가의 번영은 지적 우열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현 정부는 지식기반사회를 국가발전의 핵심목표로 설정하고, 쓸모 있는 지식을 우대한다는 명목 아래 "학력과 관계없이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발상이나 기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을 '新지식인'으로 부각시켰다.
신지식인론은 한국사회의 고질적 학력중심주의를 배제하고, 사변적·추상적 지식에 관한 지적 편향을 타파함으로써, 무한경쟁시대에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속적, 균형적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넘어선 보다 넓은 의미의 사회적 부가가치 산출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목전의 돈벌이와 직결된 편협한 공리주의적 지식관은 배격되어야 한다.
향후 선후진국간의 격차는 지식격차로 귀착될 것이며, 지식기반이 취약한 국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진단은 기본적으로 옳다. 따라서 향후 생산요소의 핵심으로 대두할 지력 향상에 매진하자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합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新지식인론은 원래 의도와는 달리 돈벌이를 일차적 목표로 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비생산적 존재로 매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지식인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고, 원리중심의 기초지식과 학문에 대한 성장을 저해하며, 성찰적·비판적 사유를 억압함으로써 최근 이삼년간 우리 사회에 심각한 반(反)지성적 분위기를 조장해 왔다.
"얄팍한 지식 장돌뱅이"를 국가적 영웅으로 미화시키는 新지식 드라이브는 인류역사의 행로를 선도할 원대한 사상이나 관념의 생성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거시적 안목, 수단, 가치 등을 강구할 수 있는 지적 통찰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신지식인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추진된 정부의 '두뇌한국'(BK21) 프로그램과 기초학문 분야 경시, 과학자ㆍ교수ㆍ의사ㆍ약사ㆍ변호사ㆍ교사 등 고유한 전문직역에 대한 파괴 및 대중화 운동, 학문연구 경시, 전문가와 지식인에 대한 격하 등은 지식정보화의 진전과 더불어 심히 우려할 만한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은 한국의 전문지식인들의 자긍심과 위상을 훼손시켜 지식정보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창의성과 전문성을 생명으로 하는 이들을 한낱 전문기술자나 지식중개상으로 전락시키는 크나 큰 위험을 낳고 있다. 의료분쟁에서의 의사와 약사, BK21ㆍ학부제ㆍ연봉제ㆍ교수노조를 둘러싼 교수, 사법개혁과정에서의 변호사, 정년단축과 공교육 파괴과정의 교사 등 전문지식인의 모습은 '떠오르는 신지식인'과 대비하여 '추락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확대시키고 있다. 따라서 바른 지식기반사회의 구축을 향한 국가적 노력이 실효성 있는 정책적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선,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긴요하다.
첫째, 지식이란 잔머리를 돌려 순간의 이익을 간취하는 단순기법에 불과하다는 경박한 지식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오랜 노력과 연공의 산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IMF 위기극복의 첨병으로 칭송되던 요리배달부, 춤꾼, 유치원업자, SF영화제작자 등이 경제회생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공적을 회고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신지식인 운동은 기존의 지식체계가 실용적 가치를 결여한 죽은 지식으로 전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식세계와 일상세계를 중계하며 "기초지식의 실용화와 실무지식의 체계화"를 담당할 지적 소통망을 강화함으로써 지적 융합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구조를 확장하는 일이 긴요하다.
셋째, 신지식인론은 기본적으로 암묵지의 담지자인 개인의 지력 향상을 우선시 한다. 하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가치를 발하는 무한가치성을 본원적 속성으로 하는 지식은 개개인의 수준을 넘어선 사회적 자원으로 전화될 때 그 효용성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지식의 공유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합리적 준칙·보상체계·규범·가치관을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넷째, 지식생산고의 증가와 더불어 지식정보의 범람, 파편화 및 무분별한 조합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분화와 통합"으로 요약되는 거시적 사회변동을 통시할 수 있는 총체적 사고력의 성장을 저해한다. 따라서 목전의 작은 이익을 초월해 메타사회학적 동향, 징표, 쟁점, 전망 등을 탐지할 수 있는 학습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자유경쟁의 논리라는 미명 아래 학부제, 연봉제 등을 내세우며 대학사회에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관제 교육개혁은 재고되어야 한다.
요컨대, 신지식인 운동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출세한 사람만을 우대하는 성공지상주의적 사고를 확산시킴으로써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모순과 더불어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하나의 우화로서 귀결되어가는 신(新)지식인 신화는 엄정한 자성을 통해 재평가되어야 하며, 사회적 거품을 제거하는 의식운동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기반사회의 주변인으로 전락하는 전문지식인이 주체로 당당히 다시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지식인 운동이 문화혁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를 만든 중국의 역사적 교훈을 일깨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표집필: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회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정책대안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