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도 일하는 사회 만들자
	2005-01-03
고령자도 일하는 사회 만들자 의학이 발달하고 공중위생이 향상되면서 우리 사회의 평균수명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2002년 생명표’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여성의 평균수명은 80.4세, 남성의 평균수명은 73.4세라고 한다. 60갑자(甲子)를 다 거친 회갑을 지나고도 평균적으로 14∼20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사오정’으로 일컬어지는 45세의 기대수명도 여성이 37년, 남성이 31년이나 된다. 고령화의 속도를 실감나게 한다.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건강하게,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간단한 것 같은 이러한 단서들이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중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4세이다. 그렇다면 노동생애가 끝나는 50대 후반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저축이나 연금으로, 자녀나 정부의 보조금으로 살아가야 하나. 노후 대비를 위한 저축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정부가 연금개혁이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복지정책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령인구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시절에는 개인적인 해법만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이 7%를 넘어선 고령화사회에 진입해 있다. 2019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14%를 넘는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돌입할 것이라고 한다. 한 사회의 재화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해법이란 없다. 출산율을 높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게 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것도 하나의 방안은 될 것이다. 그러나 출산율이란 것이 몇 가지 정책수단에 의해서 쉽게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점점 더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노동력인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고령자를 위한 사회적 일자리를 많이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정부나 사회의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부분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람들이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인 제약은 노동비용 제약이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는 대부분 연공급적 임금체계를 택하고 있다. 직무나 생산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듦에 따라 혹은 근속이 올라감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직된 임금체계는 중고령자의 퇴직연령을 오히려 더 앞당기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이대론 안 된다. 또 다른 제약은 생산성 제약이다. 기술변화의 속도가 날로 빨라지는 데 반해 나이가 듦에 따라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서구 국가들이 은퇴연령을 늦추기 위해 중고령자의 노동능력 제고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교육훈련 시스템은 고령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 고령화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적응해야 할 환경변화이다. 이러한 고령화 위기의 본질은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 확립된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질서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질서를 유지한 채 고령화의 진전을 막아보려고 정책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의 전개과정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질서를 개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경제시스템으로의 전환, 그것이 고령화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법이다. 황수경 (한국노동硏 연구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12. 3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