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양날의 칼’이 필요하다
	2004-12-22
대북정책 ‘양날의 칼’이 필요하다 남북한 모두 주변 국가들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고, 미·일·중·러 모두 한반도를 위협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비행기나 배, 기차, 승용차로 유럽과 시베리아, 중국, 일본으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한반도는 아마도 남북한 국민과 세계인 모두가 바라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북한은 지금까지 서로의 의혹과 경계심으로 소비해 왔던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생산적인 일에 돌릴 수 있을 것이며, 남북한 경제는 물론 러시아와 일본까지도 경제적 부흥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북한은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라는 핵개발 의혹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정권교체’는 아니지만 ‘체제변형’을 의도하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즉, 6자회담은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한 채 중단돼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의 중단은 상황을 호전시키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국제사회가 보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깊어가고 북한도 시간이 미국 측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한 상황은 바로 미국이 정해 놓은 북한 공격에 대한 최후의 한계선, 즉 ‘레드 라인’ 수준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그만큼 짙어지고 있다. 한편, 그동안 경제 침체로 불만이 누적돼 왔던 일본 국민의 정서도 북핵 문제와 ‘가짜 유골’ 문제로 더욱 우경화하고 있으며, 이는 대북 경제 지원이나 국교수립보다 경제 제재와 군사력 강화 논리에 더욱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행히 재집권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 지난 달 20일 칠레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신속한 대북 강경책보다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북한의 지도자’라고 표현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완화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동안 북한과 김정일을 ‘악의 축’ ‘불량국가’ 또는 ‘독재자’로서 붕괴 또는 교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대화 상대로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 부시행정부의 정책 전환은 집권 1기의 학습효과라고 할 수 있다. 집권 초기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의 대치 상황을 서부영화나 야구 경기와 같이 전력이 우세하면 당연히 승부가 분명히 가려지는 것쯤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 측을 ‘선량한 아군’, 이라크와 북한을 ‘악질적인 적군’으로 구분, 하나하나 붕괴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당시의 공화당 입장은 1994년 10월 클린턴행정부가 북한과 맺었던 ‘북·미 기본협정’을 적과의 타협이며 미국의 불명예로 생각했다.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 부시 대통령의 초기 대북 정책은 북한과의 타협은 없으며 핵 포기에 대한 보상도, 체제 보장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조건 항복’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권 4년이 지난 현재 이라크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많은 예산과 인명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협력하지 않는 한 대북 경제 제재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고, 최후 수단으로서의 군사 제재도 엄청난 재앙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의 정책은 북한의 체제 변화를 촉진시키는 남한 방식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이 세련될 때이다.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는 강경과 온건, 양날의 칼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노무현정부가 온건한 수단만 내세웠다면 가끔은 압력적 수단을 과시해 한·미 공조관계도 복원하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내모는 노력도 필요하다. 권오윤 (동국대 국제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