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과 盧대통령
	2004-12-20
양치기 소년과 盧대통령 이솝 우화인 ‘양치기 소년과 늑대’에서 소년은 결국 늑대에게 당하고 말았다. 두 번의 거짓말이 불러온 참사였다. 왜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양들을 구하러 나오지 않았을까. 살려달라고, 늑대가 쫓아온다고, 이번만은 진짜라고 호소했는데도 말이다. 잘 알다시피 문제는 두 번의 속임수에 있었다. 이는 소년의 평판을 땅에 떨어뜨림으로써 마을 사람들 누구도 소년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때문이다. 기업회계의 투명성과 정부의 투명성 확보, 1997년말부터 이듬해에 걸쳐 휘몰아친 경제위기 앞에서 당시 막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국내외에 약속한 내용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했고 한국경제는 살아난 바 있었다. 이미 6년 전의 일이다. 지난 98년 초와 작금의 상황을 비교해보자. 6년 전에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취임했던 반면, 지금은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경제가 어려워졌다. 전에는 경제위기만 겪었는데 지금은 경제적 어려움에 더하여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동시에 겪고 있다. 전에는 고통을 분담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집단간 갈등과 증오심만 가득 차 있다. ‘아군과 적군의 양분법 하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집권층 현실인식 안이 위기가 중첩되면 감각과 책임감이 모두 멎어버리는가. 이런 사태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 현 집권층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경제와 한국사회, 이상 없다”는 그들만의 신념인가, 착각인가, 또는 희망인가. 집권 초기 노무현 대통령은 두 시간 가까이 평검사들과 사상 초유의 TV 생방송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다. 서로의 입장을 매끄럽지 못한 방식으로 확인하는데 방송3사의 전파자원을 낭비하고만 셈이 됐다. 이후에도 노 대통령은 여기저기서 ‘말솜씨’를 과시해 오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솜씨’를 감상하기에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 향후의 경제전망을 보면 더욱 비관적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 저 출산, 국내 기업의 투자 위축, 신용불량 등으로 인한 내수 위축 등 모든 상황이 총체적으로 어렵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현 집권층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적 상식과 보편성에 기초한 현실인식이다. 이에 기초하여 정책은 일관성 있게, 또 미래지향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역사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경제, 교육, 국방과 외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실험정신과 열정만을 살려 국정을 운영하다가는 ‘개혁’은 커녕 그간 쌓아온 40년 성과조차 언제 거덜 낼지 모를 일이다. 역사와 현실을 무시한 경제정책은 득보다 실이 많다. 지난 정부의 ‘빅딜’에 이어 현 정부의 ‘뉴딜’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빅딜과 뉴딜 중에 굳딜(good deal)은 안 보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갖 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난무할 일이 아니다. 성장 있어야 분배도 가능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에 충실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일, 예나 지금이나 이게 올바른 정부가 할 일이다. 빈곤을 퇴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분배정책만을 앞세운다고 분배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은 지난 20세기에 인류가 바이다. 선동보다 논리가, 감성보다 이성이, 착각보다 현실인식이 강해져 이번의 어려움을 넘겨야 한다. 현 집권층은 이제라도 거짓말과 착각 속에서 늑대에게 당한 양치기 소년을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 한국일보 2004. 12.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