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투자' 경영간섭 안 되게
	2004-11-25
'연기금 투자' 경영간섭 안 되게 연기금의 투자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연기금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여부를 놓고 재경부와 보건복지부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허용하는 쪽으로 기금관리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주식투자시 연기금 소유 지분의 의결권 행사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했다. 정부가 연기금 지분을 이용하여 회사 경영에 간섭할 것을 우려한 재계와 야당이 의결권 행사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2004년 6월말 현재 국민연금기금 총액은 약 123조원으로 주식 시가 총액의 약 3분의1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면, 마음먹기에 따라 상당수 회사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당은 연기금 소유 주식의 의결권은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정부가 연기금의 투자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간여할 것이라는 의구심에서 나온 것이다. 연기금의 투자 결정이 철저히 시장원리에 따라 수익성과 안전성을 고려, 투자 전문가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이뤄진다면, 연기금을 어디에다 어떻게 투자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든 하지 않든 문제될 게 없다. 정부에서도 이 점을 감안, 국민연금의 경우 기금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는 민간인 참여를 늘려 독립 상설화하고, 자산운용기구는 따로 떼어내어 전문성·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과거 우리 정부의 행태로 볼 때, 정부의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주식시장이 침체되면, 정부가 자산운용기구에 지나친 주식투자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짙다. 옛날 일이기는 하지만, 1989년 12월 주식시장이 추락하여 주식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자, 정부는 발권력을 동원해 투신사를 지원하고 주식 매입을 강요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투신사는 엄청난 손해를 봤고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아직까지 부실투신사 처리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의결권 문제도 염려된다. 정부·여당은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처인 국내 우량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되, 해당 기업이 인수·합병(M&A) 위험에 직면하면 경영권 방어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다. 이는 벌써부터 연기금의 투자 결정에 간여하겠다는 뜻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의결권 행사 여부 역시 독립적 자산운용기구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정부가 간여할 일이 아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공정거래법개정안에 따르면, 대규모기업집단 금융사는 계열사 소유 지분에 대해서는 현행 30%에서 15%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연금 수급자도 궁극적으로는 주주이기 때문에 주주의 권익과 수익성 확대를 위해서 연기금 소유 주식의 의결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똑같은 논리가 대기업집단 금융사 소유 계열사 주식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예금자나 가입자의 자금으로 취득한 주식은 이들의 권익과 수익성 확대를 위해서 의결권이 인정돼야 한다. 다시 말해, 정부 자신이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연기금과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생명보험회사의 장기투자 행태를 보면, 주식투자는 전체 자산의 5%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현 상태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은 이와 비슷한 수준 안에서 이뤄지도록 규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또한, 개별 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도 경영권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취득할 수 있는 지분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도한 주식투자로 인한 연기금의 부실화 우려와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경영 간여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