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은 北으로
	2004-11-22
이제 공은 北으로 칠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 대선 이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교착상태인 북핵문제를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북핵문제 해결에서 양 정상은 총론에서 일단 합의했다. 하지만 각론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에선 여전히 상당한 의견 차이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핵문제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한국보다는 대중국 설득에 외교적 노력을 집중했다. 미국은 중국에 북한이 4개 내지 6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이미 추출했다는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고 중국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에 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킨 북한의 우라늄농축 계획과 관련된 극비 자료를 넘겨주었다. 중국은 이 사실을 자체적으로 파키스탄을 통해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미·중간의 공조는 이번 한미회담을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한국이 쥘 수 있다는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는 지나친 낙관론에서 벗어나서 미·중의 북핵 공조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냉정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회담 직후 한국이 주도적으로 북핵문제 해결 방안을 만들어 미국과 주변국들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6자회담을 거치면서 북미 사이의 입장 차이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북한은 핵 동결에 상응해서 에너지를 비롯한 대규모 경제원조 형식의 보상을 받아야 하고 여기에는 반드시 미국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완전한 핵 폐기 이전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3차 6자회담 직전 미국은 완전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북한의 핵 동결시 미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이 북한에 보상해주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기존의 입장을 완화했다. 이런 입장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6자회담 성공의 관건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면서 정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무턱대고 북미 사이의 중재안을 제시하려다가 실패하면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지만 매우 좁아져서 향후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외교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전제로 플루토늄 및 우라늄 핵 시설을 동결하면, 미국을 포함한 5개국이 에너지 지원을 이행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한 특별다자기구를 창설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이 기구는 현재 중단되어 있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사업 재개 문제도 다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기구 내에 북한 경제지원을 위한 특별금융기구를 설치함으로써, 북한이 북핵 해결 이후 적극적인 개혁·개방으로 나올 경우 북한판 마셜플랜을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북핵 6자회담을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적 문제를 다룰 영구적인 다자기구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의 실마리가 풀려나가면 향후 회담 장소를 서울로 가져오는 문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인센티브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끝까지 핵개발과 보유를 고집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이 질 수밖에 없다. 6자회담 무용론은 유엔안보리 회부 혹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한 강경한 북핵문제 해결 방식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긴장은 고조될 것이고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6자회담 개최 여부는 북한에 달려 있다. 북한이 계속 6자회담 참석을 거부하면 6자회담 무용론은 급격히 고개를 들게 되고 부시 대통령이 준비한 강경 해법이 적용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 전개를 막기 위해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11.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