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헌법교육 개선하자
	2004-11-09
초·중·고 헌법교육 개선하자 헌법이 생활규범이라는 것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 국민은 잘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국가 운영에 관한 거창한 문제들에 대해 복잡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헌법이라는 인식이 오히려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됐다.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 비로소 헌법은 최고법으로서의 위상을 점차 확보하게 됐고,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 등을 통해 많은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았다. 또,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 등으로 헌법재판의 위력이 국민의 뇌리에 새겨지게 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의 활성화만으로 헌법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민이 헌법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며, 이러한 헌법 이해에 기초하여 국민이 헌법의 주인으로서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특히 초·중등학교에서 헌법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헌법은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된 최고법으로서 국민주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모든 법률의 내용적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는 민주국가의 기본적 이념과 원리, 국민의 기본권과 기본의무, 그리고 국가조직 및 활동의 기본적 사항들이 규정돼 있다. 이러한 헌법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소양을 쌓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나치의 경험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초·중등학교에서 민주정치에 관한 교육을 심화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중심에는 독일의 헌법에 구체화돼 있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비롯한 헌법원리와 헌법상의 각종 제도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교육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올바른 형태로 생활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초·중등학교 교과서들에서는 헌법에 대한 내용이 민주시민의 양성을 위한 정치교육의 핵심으로 비중있게 다뤄지기는커녕 오류 투성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지적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런 문제점의 뿌리가 과거 유신과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교육에 있다면, 그것은 방치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헌법이 사실상 사문화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피와 땀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것이 벌써 10여년 전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새싹들이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와 다를 바 없는 교육을 받고 자라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불안한 것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초·중등학교의 헌법 교육에서 전문적인 내용까지 다룰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올바른 내용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헌법전문가의 참여 내지 검토가 필수적이다. 단지, 과거의 교과서에 나오던 내용을 답습한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이번 기회에 초·중등학교의 헌법 교육, 나아가 정치 교육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도 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생활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배우면서 자긍심을 키우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또한, 법을 왜 준수해야 하는지를 배우면서 동시에 악법을 극복하는 방안도 공부해야 할 것이다. 헌법은 우리 나라와 겨레의 현대사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우리 국민이 추구하는 정의사회의 이념,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제도들을 담고 있는 약속이기도 하다. 이를 어려서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은 어렵게 달성한 민주주의를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