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까지 대통령 닮아가면
	2004-11-01
총리까지 대통령 닮아가면 정책 정당성 설득 노력을 전투적 리더십은 이제그만 이해찬 총리와 야당 의원간의 언쟁이 국회 공전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총리의 역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총리는 내각제는 물론이고 다른 대통령제 국가와 비교할 때도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총리라는 자리가 아예 없는 미국과도 다르고 의회 의석 분포에 따라 대통령과 다른 정당 소속의 총리가 등장할 수도 있는 프랑스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총리는 일선 정치에서 한발 벗어나 행정적인 업무에만 집중해 왔다. 총리는 정치인인 대통령이 공약했거나 결정한 사안이 효율적으로 집행되도록 관장하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의 역할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김종필이나 이한동과 같은 정치인들이 총리였던 시절에도 이런 특성은 대체로 유지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당정을 분리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권한의 일부도 총리에게 이양하겠다고 했다.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총리들과는 달리 이 총리가 정치적 사안에도 개입하는 ‘실세 총리’가 된 것은 노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관련이 있다. 사실 총리가 업무와 관련된 정치적 쟁점에 대해 소신 없이 비켜나가려고 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갖는 것보다는 국정 현안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권한이 부여된다고 해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내각제 국가의 총리와는 달리 우리나라 총리의 권한은 사실상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도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지게 된다. 총리가 실세(實勢)이고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과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이나 소신을 펼 수는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보완하는 범위 내에서만 자율권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노 대통령의 비타협적이고 이념 지향적 태도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심화된 요즘 총리까지 나서 이를 거들고 악화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야당 당수이던 시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총리인 집권당 당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을 처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야당 당수인 자신은 아침마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말로 정부를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밖에 없다는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따라서 ‘말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야당이 사사건건 정부 정책을 질타하고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라면 야당과 똑같은 어조로 반격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하고 설득하려고 애쓰는 것이 보다 타당한 행동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를 맞받아 질타한 이 총리의 태도는 결코 적절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포용과 설득의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리마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망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사회적 대결과 분열을 치유해줄 화해와 대화의 리더십이다. 전투적 리더십은 지금으로도 너무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11.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