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 바뀌어야 한다
	2004-09-07
TV 프로 바뀌어야 한다 지난 주에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매주 금요일 밤 KBS 2TV에서 심야에 방송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라는 성인 대상의 라이브 가요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이 선정한 오락부문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뽑혔다고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던 TV 연예오락 프로그램 제작 관행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려주는 참신한 소식이다. 주로 노래보다는 춤과 립싱크에만 의존하는 댄스 가수들이 판치는 음악순위 프로그램과 달리 라이브 노래만을 고집했던 이 프로그램은 진작부터 성인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방송의 주요 시청자층인 10대 청소년들 역시 황금시간대의 연예오락 프로그램들보다 수준이 더 높은 이 음악 프로그램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청자들의 수준은 점점 다양해지고 전문화해 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일선 제작자들은 이런 트렌드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을 TV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장황한 설명이 필요없다. TV를 켜고 몇 개의 채널을 보기만 해도 금방 뭐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주로 인기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한 잡담이나 늘어놓고, 출연자들은 자기들만의 운동회나 오락회를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한심한 내용 일색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대부분이 온갖 억지적인 상황 설정 등으로 황금시간대를 장악하고 있어 가뜩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요즘 국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오랫동안 학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구체적인 내용 분석과 토론 등을 통해 비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청자들에 대한 무례한 방송 제작 관행은 지난 올림픽 기간에 여실히 입증된다. 아테네 올림픽 중계를 위해 KBS의 경우 130여명, MBC는 100여명, SBS 90여명 등 방송3사는 무려 320여명의 취재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계속해서 지적했던 금메달 지상주의 보도, 일부 인기 종목의 중복 방송 등 이번 올림픽 중계는 어느 것 하나도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책은 팔리지 않아 유통업체와 서점들이 줄줄이 도산해 가고 있고,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장은 아무리 할인을 해 줘도 관객이 없는 무대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음반산업은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방송산업, 특히 지상파 TV는 시청료와 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넘치는 광고의 돈잔치 속에서 여전히 철밥통을 고수해 가고 있다. 그러나 방송업계의 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 오산이다. 그 누가 우리나라 신문업계가 요즘 같은 불황에 빠지리라고 예상했었는가. 방송 역시 이미 위기는 시작됐다. 아무리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KBS의 경우 지난해보다도 더 많은 1500여억원의 엄청난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류 열풍으로 드라마 한두 편이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고 하여 한국의 방송 경쟁력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방송사들은 지금부터라도 시청률이라는 낡은 올가미에 묶여 즐거움이나 감동도 주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는 관행을 접길 바란다. 함부로 시청자들의 수준을 기존의 관행이나 감각으로 폄훼하여 귀중한 전파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성동규 (중앙대 교수·신문방송학) 출처 - 문화일보 2004. 9. 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