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의 재판관 행세
	2004-08-23
시민단체들의 재판관 행세 현직 법원장이 ‘심각한 위기’라 거론한 시민단체에 의한 사법권 독립의 훼손 우려, 그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법부에 종사하는 특정집단의 권익 옹호를 위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한 고위공직자가 메는 총대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현 참여정부에 들어와 특히 사회세력이 사법권을 부쩍 훼손하고 있음을 알리는 경종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 거론의 시점이 신임 대법관의 임명제청의 즈음이고, 그 위기의 진원지가 권력이 아니라 최근 그 영향력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커진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사회세력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법 현장에서 일하는 현직 법관들의 고뇌의 일부를 대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인색하지 않은 평가일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자신의 개인적·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법조적 양심 즉 객관적 합리성에 따라 심판해야 하는 사법의 재판상 독립이 그 시민단체로부터 침해받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법부는 가장 덜 정치적이어서 가장 덜 위험한 기관이다. 그래서 사법권은 국가의 권력은 물론 사회의 세력으로부터도 독립하여야 권력분립의 헌법원칙에 합치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 잘 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이미 작년과 올해 2명이 교체되며, 내년에는 6명, 그다음해에 5명이 교체되는 등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노 대통령 임기 중에 교체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고비는 내년 9월 최종영 대법원장 후임자 선임이 될 것이다. 혹여 그 발언이 앞으로 있을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임명에 코드를 맞추고 싶어하는 법관들의 곤혹스러움을 표현한 것이라면, 사법부 독립의 침해 우려는 시민단체의 책임이 아니라 법관들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새로운 대법원장이 와서 인사권을 막 휘두를 것”이라는 법관들의 위기감이 이러한 발언의 저간에 있다면, 그것 역시 법원은 법관의 연공서열이 아니라 국민의 주권에 기초한 사법부라는 점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점에 대한 상황적 부적응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법의 독립성 역시 국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양심에 따른 독립한 재판 또한 보통사람들이 ‘아 그렇구나’라고 공감하는 상식에 따라서 행하는 재판으로 인식해 가는 진통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유권자 운동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적극적 실천의 발로다. 일본만 하더라도 유권자에게는 최고재판소 재판관(우리의 ‘대법관’)의 국민심사라고 하는 헌법상 권리가 있다. 2000년 6월 27일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대법관 낙선운동 시민조직인 ‘시민연대·물결21’이 결성된 바도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막아야 할 것은, 시민단체의 사법부에 대한 그 인풋(input)의 관계가 법원을 포퓰리즘적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점에 있다. 지금이라는 시점에서는 그 전조도 차단되어야 한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르면 비영리민간단체는 특정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몇몇 단체들이 벌이는 운동은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시민단체의 활동은 객관성을 가져야 민주주의사회에서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몫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바로 대의정치구조 속에서 시민운동의 한계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들이 각종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사법 재판관을 제치고 사회적 재판관을 자임하거나 더 나아가 결과적으로 특정 정파권에 치우쳐 있다는 시민적 비판을 받게 된다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한국 시민사회의 공허한 현실을 더욱 깊게 할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8.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