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가슴을 열고 대화 응해야
	2004-08-12
北 가슴을 열고 대화 응해야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무산되면서 남북관계는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최근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 문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긴장조성 문제, 탈북자 468명의 입국 문제 등을 둘러싼 남북간의 갈등으로 장관급회담이 무산되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과 민간차원의 교류협력 문은 열려 있지만 당국차원의 대화창구가 막힘으로써 남북당국간 신뢰구축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북핵 문제 등으로 국제적 고립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남북대화의 문마저 받아버린 속사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 하원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직후에 있은 탈북자의 한국 입국을 북한체제 붕괴를 위한 ‘평화적 이행전략’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탈북자 입국 문제에 대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유인납치행위”라고 하면서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미국이 북한인권법안을 제정하여 북한을 평화적으로 붕괴시키려 하는데 남측이 동조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북당국 대화에 나오지 않은 것은 체제전복과 관련한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과 대규모 탈북자 입국을 체제붕괴의 전조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남측 당국이 “탈북자 문제를 민족적 이익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미국의 의도에 따라 처리했다”고 하면서 10년 전 김영삼 정부가 조문 파동을 빚어내고 북한 조기 붕괴론을 내세워 흡수통일을 추구한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라고 주장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금의 북한 상황이 김 주석 사후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북한 당국의 상황인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남한 당국의 북핵 해결 우선주의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의 9·11 테러 사태 이후 위기의 한반도 정세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우리 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의 지속 등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의 안보불안감을 들어주고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적극 모색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특사교환이나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큰 가닥을 잡아야 남북화해 협력정책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대북정책 기조를 설정하고 기존 합의사항 이행에 주력할 뿐 정부차원의 새로운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핵 해결을 위한 한반도 위기상황 악화 방지 등 상황관리에 주력할 뿐 상황돌파를 위한 무리수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로 집권당이 여대야소의 안정의석을 확보함으로써 6·15 남북공동선언을 본격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주관적·객관적 조건들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고 탄핵정국 이후 참여정부의 전향적 대북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여전히 북핵 해결 우선과 국제공조를 강조하자 이에 반발하면서 당국간 대화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체제위기 심화와 국제적 고립 등을 고려해 볼 때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장기화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당국간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면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핵 문제, 역사왜곡 문제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 이런 시기에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냉각기가 지속되면 한반도 운명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대국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다. 북한이 이제 더 이상 말로만 ‘민족공조’를 외칠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우리 민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현안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8.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