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정부 自省부터
	2004-08-03
신용카드, 정부 自省부터 YS정부의 외환위기를 넘겨받아 경제 살리기에 어려움을 겪은 정부가 DJ정부라면, DJ정부로부터 신용카드 위기의 채무를 상속받아 중증의 병환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가 현 참여정부이다. 현재 시장의 바닥경제가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원성과 탄식이 자자한 것을 보면 카드 위기로부터 발생한 내수침체를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신용카드 남발은 곧 내수침체로 이어졌고 이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함께 사회적으로는 빈곤층을 양산하게 되었으며 이를 기화로 무려 연 1000% 이상의 고리채가 극성을 부리는 시장을 형성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약 400만명에 이르는 전체 신용불량자의 70%가 신용카드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자들이고, 카드 빚에 쫓기고 허덕인 나머지 생을 자살로 마감하는 비극적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감사원은 2003년 11월 LG카드 사태를 맞아 뒤늦게 정부의 카드대책을 그 정책감사의 첫 대상으로 삼고 의욕적으로 감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 7월 16일 감사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감사는 그 한계를 노출한 부실감사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원은 정작 카드정책을 주물렀던 재경부, 금감위 및 규제개혁위원회에 대해서는 ‘기관 주의(注意)’라는 솜방망이만 휘두르고, 개인 책임을 묻는 차원으로는 최종결정권자의 지위에 있지도 않은 금감원 부원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웠기 때문이다. 마치 힘센 기관 순위라도 매기는 작업을 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감사원장은 그 당시 경기 부양을 위해 카드활용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최근 국회 법사위에서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카드 부실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카드 회사와 카드 사용자에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카드 문제의 깊은 구렁텅이로 유인하여 카드 사용자를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당시의 정부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1999년 외환위기 극복을 조기에 완료해 경제위기를 넘겼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욕심에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1999년에는 카드사의 현금대출 비중 50% 제한과 월 70만원의 현금서비스 한도를 전격 폐지하였고, 2000년 1월에는 카드 사용 영수증 복권제도까지 요란하게 시행했다. 그러다 보니 수익 제고에 혈안이 된 카드사의 무차별적인 회원확보 전쟁이 벌어졌고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에서부터 미성년자에게는 물론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마저 유예받은 184만명, 심지어 죽은 사람에게도 카드가 발급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신용’없는 ‘신용카드’를 정부가 부추기며 경기부양 정책으로 포장한 ‘카드 광란극’인 셈이다. 그렇다면 재경부에는 현금서비스 축소와 카드발급 요건 강화와 같은 대책을 제때 내놓지 않은 점을, 규제개혁위원회에는 금감위가 요청한 길거리 모집에 대한 규제를 거부한 점에 대해 각각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제대로 된 정책감사의 출발이 아닐까. 정책감사의 목표는 잘못된 정책을 되짚어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책감사를 표방하면서 주요 정책부서와 최종결정권자에게 면죄부를 주며 오히려 “뭐가 잘못됐느냐”고 강변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감사였는지 되묻고 싶다.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내 탓이고 우리 탓’이라는 자성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관료의 기본자세여야 한다. 백태승 (연세대 법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8.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