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한국은 문화 순혈(純血)주의와 완전 결별해 있어야 한다. 문명의 이종(異種)교배를 통해 매력있는 ‘문화 잡종국(하이브리드 코리아)’을 이루자는 목표 아래 조선일보와 ‘코리아 프로젝트 2020’은 “출·입국자 2000만명 시대를 열자”의 행동계획을 제시한다.
문화는 인적 교류를 통해 자극되며 발전한다. 지난해 외국인 427만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인 570만명이 해외를 다녀와 약 1000만 명이 국경을 넘나 들었다. 이는 한국 인구의 21%에 해당되는 비율로, 인구의 31%(8600만명·2000년·육로를 통한 외국방문은 제외)꼴로 왕래한 미국에 크게 못미친다.
프로젝트 팀은 ‘정주(定住)’ 대신 ‘유목(遊牧)’의 패러다임이 지배할 18년 뒤엔 한국~세계 간 사람 왕래 수가 지금보다 2배는 늘어나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적어도 1000만명의 한국인과 1000만명의 외국인이 왕래하며 문화 요소를 혼혈교배하는 ‘대이동의 시대’를 열지 못하면 문화강국의 꿈은 이루기 힘들다.
우선 ‘쌍방향 홈스테이망(網)’부터 구축해놓자. 외국 젊은이들이 배낭 여행지로 한국행(行)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싸면서 안전한 숙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불편한 숙박시설과 배타적 사회 분위기로 외국인의 한국행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프로젝트 팀은 외국인 방문객의 가정집 숙박을 촉진하기 위해 ‘홈스테이 인증(認證)’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관광공사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홈스테이 희망 가정을 심사해 안전성을 보증, 공시하자는 아이디어다. 홈스테이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종합 인터넷사이트도 만들자.
세계경제포럼(WEF)이 스위스에서 개최하는 ‘다보스 회의’의 동아시아판(版)으로 ‘제주 경제포럼’(가칭)을 창설하자. 국제기구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추진하고, 외국인 유학생·노동자와 한국의 독거(獨居) 노인을 결연맺는 사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경제특구만 추진하지 말고 그 안에 다양한 문화의 교류센터가 될 ‘세계 문화촌’(가칭)을 건설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렇게 해서 2020년의 한국은, 다양한 문명이 혼합·공존하는 ‘문명의 비단길’로 변모해야 한다.
( 朴正薰기자 jh-park@chosun.com )
[2020] 외부 문화유전자 적극 받아들여야 강대국된다
美-英등 선진국은 ‘문화 순혈주의’집착안해
인류 역사에서 융성했던 국가는 대개 문화적 잡종성을 용인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세계사는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강대국들은 외부의 문화 유전자를 받아들여 혼성함으로써 결국 강인한 문명적 표준을 만들어내곤 했다.
근대 초기 지리 혁명을 이뤘던 포르투갈인들은 놀랄 만큼 인종적 편견과 지역적 편협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융성기의 포르투갈은 기독교·유태교·이슬람 등을 혼성한 이른바 ‘문명 칵테일’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 후 문화적 잡종성과 결별하고 순혈주의를 추구하면서 포루투갈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럽 세계에 ‘네덜란드 표준’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문화적 잡종성에 대한 수용 태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베네치아가 이단자로 취급되던 사람들을 불러모아 베네치아 특유의 잡종성을 만들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운 암스테르담의 자유로운 공기는 유럽 대륙의 문화적 순혈주의에 허덕이던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에스파냐의 패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힘도 문화적 잡종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재판소를 주도하며 카톨릭의 장녀임을 자임했던 에스파냐의 문화적 순혈주의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결과가 된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문화적 착종과 교배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현대의 민주적 제국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위용 또한 문화적 잡종성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미국 내의 인종갈등도 심각한 수준이지만 미국만큼 문화적 혼성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놓은 나라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혼성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는 명제에 익숙해져 있다. 광속(光速)같은 세계화 물결에 놀란 한국인들이 주문처럼 되뇌였던 이 명제는 세계 각국의 문화적 순수성이 모자이크처럼 공존하는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런 주술적 문화론은 단일민족의 허구성을 은폐하는데 동원되기도 하고, 가부장적 혈통주의를 엄호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순혈주의를 옹호하는 문화론이 되기도 하며, 스스로가 문화적 순혈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문화적 잡종의 산물이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신라의 불상에는 아테네 신상의 유려한 윤곽선이 선명하고, 왕릉 앞의 눈이 깊고 코가 높은 무인상에는 분명 아랍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88올림픽 개막식 프로그램 중 가장 한국적 장면으로 기억되는 굴렁쇠 굴리기도 사실은 몽골의 어린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순혈주의적 문화론의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장 국제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역방향의 명제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해양과 대륙의 길목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융합시키는데 탁월했던 전통. 그리하여 순종보다 더 찬란한 잡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역량. 개신교와 카톨릭, 불교와 천도교, 유교와 무속신앙이 상대적 평화 속에 공존하는 코리아. 다양한 외래어들을 용해시켜내는 넉넉한 체계의 한글.
어느 한편에 기울거나 속하지 않고 다양한 국제적 관계를 유지했을 때 가장 독창적이었던 것이 한국의 역사였다, 일차원적인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 문화적 잡종성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세계화된 혼성 한국, ‘코스모 코리아’를 꿈꾸며.
( 金明燮·한신대 교수·코리아프로젝트 2020 기획위원 )
[미래로 가자] “韓출생 美성장 1.5세 교포 활용해야”
“월 가(街)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에서 이런 사람들 20명 정도만 고용하면 한국의 경제 위기는 몇 달 내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1998년초 월 가의 한 대형 금융기관 회장으로 부터 들은 말이다. 현재 미국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1·5세로 추정되는 수치는 10만명에 달한다. 1·5세란 초·중학교때 쯤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가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다 유창하게 잘 하는 세대를 말한다.
90년대 들면서 이들 1.5세들의 역류(逆流)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대두됐다. 아마 일반대중에게는 화려한 외양의 연예인 이미지가 1.5세의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UC 버클리, 스탠포드대,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훨씬 더 많다. 장차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갈 과학자·교수·의사·사업가·변호사가 될 사람들이다. 미국에 눌러 살도록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사회에서는 1.5세들을 포용할 여지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1.5세 친구 한 명은 한국에서 공부하길 포기했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에 입학하려 했지만 교수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1.5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재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1.5세들의 한국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기관 또는 공공적 성격의 단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런 기관·단체가 있다면 한국 생활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고 1.5세들에게 한국의 직장이나 시민 단체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특히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나 성 윤리, 대화할 때의 유의 사항, 하숙집 소개 등 기본적 사항을 교육훈련하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
이들 1.5세들은 약간의 훈련과정만 거친다면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원어민 못지않게 영어 회화를 가르칠 수 있다. 또 금융 등 경제계는 물론 과학·기술계 재원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봉사 활동을 원하는 1.5세들에겐 번역이나 통역 일을 주선해 주면 된다.
한국에서 문학을 공부한 1.5세들이 미국에 돌아간 다음에도 번역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면 한국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의 맛을 동시에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약간의 재정적 후원만 주어진다면 전 세계에 한국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의 조국 한국은 무척 배타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러나 1.5세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실질적·물질적 배려가 조합된다면 더 많은 1.5세들이 한국을 위해 일하려 할 것이다. 그들의 학문적·언어적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방식들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0 미래로 가자] ‘순혈’ 버리고 문화잡종국 만들자
국제기구-유학생 유치 종합계획 필요
2020년의 한국은 문화 순혈(純血)주의와 완전 결별해 있어야 한다. 문명의 이종(異種)교배를 통해 매력있는 ‘문화 잡종국(하이브리드 코리아)’을 이루자는 목표 아래 조선일보와 ‘코리아 프로젝트 2020’은 “출·입국자 2000만명 시대를 열자”의 행동계획을 제시한다.
문화는 인적 교류를 통해 자극되며 발전한다. 지난해 외국인 427만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인 570만명이 해외를 다녀와 약 1000만 명이 국경을 넘나 들었다. 이는 한국 인구의 21%에 해당되는 비율로, 인구의 31%(8600만명·2000년·육로를 통한 외국방문은 제외)꼴로 왕래한 미국에 크게 못미친다.
프로젝트 팀은 ‘정주(定住)’ 대신 ‘유목(遊牧)’의 패러다임이 지배할 18년 뒤엔 한국~세계 간 사람 왕래 수가 지금보다 2배는 늘어나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적어도 1000만명의 한국인과 1000만명의 외국인이 왕래하며 문화 요소를 혼혈교배하는 ‘대이동의 시대’를 열지 못하면 문화강국의 꿈은 이루기 힘들다.
우선 ‘쌍방향 홈스테이망(網)’부터 구축해놓자. 외국 젊은이들이 배낭 여행지로 한국행(行)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싸면서 안전한 숙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불편한 숙박시설과 배타적 사회 분위기로 외국인의 한국행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프로젝트 팀은 외국인 방문객의 가정집 숙박을 촉진하기 위해 ‘홈스테이 인증(認證)’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관광공사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홈스테이 희망 가정을 심사해 안전성을 보증, 공시하자는 아이디어다. 홈스테이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종합 인터넷사이트도 만들자.
세계경제포럼(WEF)이 스위스에서 개최하는 ‘다보스 회의’의 동아시아판(版)으로 ‘제주 경제포럼’(가칭)을 창설하자. 국제기구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추진하고, 외국인 유학생·노동자와 한국의 독거(獨居) 노인을 결연맺는 사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경제특구만 추진하지 말고 그 안에 다양한 문화의 교류센터가 될 ‘세계 문화촌’(가칭)을 건설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렇게 해서 2020년의 한국은, 다양한 문명이 혼합·공존하는 ‘문명의 비단길’로 변모해야 한다.
( 朴正薰기자 jh-park@chosun.com )
[2020] 외부 문화유전자 적극 받아들여야 강대국된다
美-英등 선진국은 ‘문화 순혈주의’집착안해
인류 역사에서 융성했던 국가는 대개 문화적 잡종성을 용인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세계사는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강대국들은 외부의 문화 유전자를 받아들여 혼성함으로써 결국 강인한 문명적 표준을 만들어내곤 했다.
근대 초기 지리 혁명을 이뤘던 포르투갈인들은 놀랄 만큼 인종적 편견과 지역적 편협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융성기의 포르투갈은 기독교·유태교·이슬람 등을 혼성한 이른바 ‘문명 칵테일’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 후 문화적 잡종성과 결별하고 순혈주의를 추구하면서 포루투갈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럽 세계에 ‘네덜란드 표준’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문화적 잡종성에 대한 수용 태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베네치아가 이단자로 취급되던 사람들을 불러모아 베네치아 특유의 잡종성을 만들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운 암스테르담의 자유로운 공기는 유럽 대륙의 문화적 순혈주의에 허덕이던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에스파냐의 패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힘도 문화적 잡종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재판소를 주도하며 카톨릭의 장녀임을 자임했던 에스파냐의 문화적 순혈주의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결과가 된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문화적 착종과 교배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현대의 민주적 제국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위용 또한 문화적 잡종성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미국 내의 인종갈등도 심각한 수준이지만 미국만큼 문화적 혼성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놓은 나라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혼성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는 명제에 익숙해져 있다. 광속(光速)같은 세계화 물결에 놀란 한국인들이 주문처럼 되뇌였던 이 명제는 세계 각국의 문화적 순수성이 모자이크처럼 공존하는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런 주술적 문화론은 단일민족의 허구성을 은폐하는데 동원되기도 하고, 가부장적 혈통주의를 엄호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순혈주의를 옹호하는 문화론이 되기도 하며, 스스로가 문화적 순혈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문화적 잡종의 산물이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신라의 불상에는 아테네 신상의 유려한 윤곽선이 선명하고, 왕릉 앞의 눈이 깊고 코가 높은 무인상에는 분명 아랍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88올림픽 개막식 프로그램 중 가장 한국적 장면으로 기억되는 굴렁쇠 굴리기도 사실은 몽골의 어린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순혈주의적 문화론의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장 국제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역방향의 명제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해양과 대륙의 길목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융합시키는데 탁월했던 전통. 그리하여 순종보다 더 찬란한 잡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역량. 개신교와 카톨릭, 불교와 천도교, 유교와 무속신앙이 상대적 평화 속에 공존하는 코리아. 다양한 외래어들을 용해시켜내는 넉넉한 체계의 한글.
어느 한편에 기울거나 속하지 않고 다양한 국제적 관계를 유지했을 때 가장 독창적이었던 것이 한국의 역사였다, 일차원적인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 문화적 잡종성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세계화된 혼성 한국, ‘코스모 코리아’를 꿈꾸며.
( 金明燮·한신대 교수·코리아프로젝트 2020 기획위원 )
[미래로 가자] “韓출생 美성장 1.5세 교포 활용해야”
“월 가(街)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에서 이런 사람들 20명 정도만 고용하면 한국의 경제 위기는 몇 달 내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1998년초 월 가의 한 대형 금융기관 회장으로 부터 들은 말이다. 현재 미국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1·5세로 추정되는 수치는 10만명에 달한다. 1·5세란 초·중학교때 쯤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가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다 유창하게 잘 하는 세대를 말한다.
90년대 들면서 이들 1.5세들의 역류(逆流)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대두됐다. 아마 일반대중에게는 화려한 외양의 연예인 이미지가 1.5세의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UC 버클리, 스탠포드대,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훨씬 더 많다. 장차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갈 과학자·교수·의사·사업가·변호사가 될 사람들이다. 미국에 눌러 살도록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사회에서는 1.5세들을 포용할 여지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1.5세 친구 한 명은 한국에서 공부하길 포기했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에 입학하려 했지만 교수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1.5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재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1.5세들의 한국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기관 또는 공공적 성격의 단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런 기관·단체가 있다면 한국 생활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고 1.5세들에게 한국의 직장이나 시민 단체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특히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나 성 윤리, 대화할 때의 유의 사항, 하숙집 소개 등 기본적 사항을 교육훈련하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
이들 1.5세들은 약간의 훈련과정만 거친다면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원어민 못지않게 영어 회화를 가르칠 수 있다. 또 금융 등 경제계는 물론 과학·기술계 재원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봉사 활동을 원하는 1.5세들에겐 번역이나 통역 일을 주선해 주면 된다.
한국에서 문학을 공부한 1.5세들이 미국에 돌아간 다음에도 번역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면 한국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의 맛을 동시에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약간의 재정적 후원만 주어진다면 전 세계에 한국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의 조국 한국은 무척 배타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러나 1.5세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실질적·물질적 배려가 조합된다면 더 많은 1.5세들이 한국을 위해 일하려 할 것이다. 그들의 학문적·언어적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방식들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콜린 박/한국명 박상희, 하버드 대학원생, ITchosun.com 유학 담당자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