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일탈이냐 일상이냐
	2004-03-22
촛불집회, 일탈이냐 일상이냐 지난 주말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12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열렸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가 진행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집회의 성격과 정치적 파급효과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은 대충 세 가지로 정리되는 듯하다. 첫째, 촛불집회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보수적 시민단체의 시각이다. 촛불집회가 헌법에 따른 적법 절차로 이뤄진 국회의 탄핵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거리시위를 통해 반대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집회가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고 특정 정당에 대한 심판과 지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둘째, 촛불집회를 강행해 온 진보적 시민단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탄핵을 반대하고 있는 점을 중시한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에 기초해 민의에 반하는 대통령 탄핵에 평화적 반대집회를 하는 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촛불집회가 위법이란 주장에 대해서도 집회의 성격을 문화행사로 바꿨고 가급적 정치적 색깔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대응한다. 셋째, 탄핵으로 발생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 및 국정혼란이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양쪽이 탄핵 찬반 행동을 자제하고 차분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촛불집회 자제론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냉철한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국민의 일반의사를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필자는 촛불집회를 보.혁 대결 양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형국에서 양자 간 상호보완적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참여가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특히 제도정치의 틀을 벗어나는 과도한 동원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정치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적 정치문화(civic culture)란 것도 과도한 참여를 지양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정치를 대표자들에게 위임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촛불시위는 제도권 정치를 우회해 이뤄지는 거리의 정치로서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통과된 국회의 탄핵안을 일단 받아들이되 민의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라면 거리의 정치가 아니라 다음 선거를 통해 심판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정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의 입장에서 참여는 미덕이다. 나아가 대의민주주의자들이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저항의 정치'가 실상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투표와 정당가입 등 전통적인 정치참여가 퇴조하고 있는 대신 시위, 인터넷 네트워킹, 보이콧 등 직접행동이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보편화하고 있으며 저항의 정치에 참여하는 계층도 더 이상 젊은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수준이 높은 전문.관리 직종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등 정치참여의 주류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취약한 대의정치와 왜곡된 정당정치로 대표되는 현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참여민주주의의 정당한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양자가 견제와 협력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상호 상승적인 관계를 어떻게 구축하는가 하는 점이다. 양측 모두 극단적인 견해를 접어야 한다. 우선 촛불집회를 특정 정치집단 및 일부 급진세력에 의해 조직된 비민주적 여론몰이로 폄훼하는 보수세력의 일부 견해는 수정돼야 한다고 본다. 참여민주주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단순한 저항의 정치를 넘어 자기들의 행동이 궁극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촛불집회가 대의민주주의와의 충돌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 민주주의의 절차와 규범을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김의영 (경희대 정치외교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3.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