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식 재난’ 대응력 높여야
	2004-03-10
‘게릴라식 재난’ 대응력 높여야 100년 만의 3월 폭설이 우리들에게 던져 주는 교훈은 크다. 눈이 녹고 봄 기운이 완연해지면 우리는 또 이 폭설을 쉽게 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 재난을 신(神)의 뜻으로 돌려버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과학 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운전자가 도로상의 차 안에 갇힌 채 헬리콥터로 물과 빵을 공급받는 ‘사건’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폭설 예고가 기상청에서 발표되면 도로공사는 차량의 고속도로 진입을 막아야 마땅하다. 기상청과 도로공사는 이번에 그렇게 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한두 시간에 20㎝가 넘는 폭설이 내릴 경우 고속도로든 일반 도로든 차량 운행을 통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와 같은 100년 만의 폭설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경제적 논리가 있다. 즉, 100년 만의 폭설을 대비하기 위해 예산·에너지·장비의 투입을 준비하기에는 그 비용이 너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그 돈을 예방이나 복구에 쓴다면 더 경제적인 운영이 될 것이라는 이 이론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이 재난기금이나 예비비로 축적돼 경제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철 설해(雪害) 대비의 핵심은 제설 작업에 동원될 인력과 장비, 물자 구입이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및 미국 보스턴의 지방정부 예산 가운데 눈 관련 행정 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서도 이 점은 충분히 확인된다. 워싱턴 주의 지방정부들도 마찬가지다. 그 비용과 편익의 대비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편익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비용·편익의 비율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눈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발전된 사회일수록 커진다. 그래서 엄청난 제설 작업 비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앞으로는 경제 규모에 비례하여 폭설로 인한 피해 규모가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인한 재난 대비를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재난은 물론 인재(人災)에 대해서도 좀더 완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신속한 복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전통 농업 사회에서는 봄철의 산불과 가뭄, 여름철의 풍수해와 폭풍, 겨울철의 폭설이 하늘의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산업사회·정보화사회·서비스사회·첨단과학문명에서는 하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으로 해석돼야 한다. 자연 재난은 현대 사회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자연 재난을 과학·기술적으로 대응하고, ‘만에 하나’까지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공항이나 도로나 항구가 폐쇄되고, 축사가 무너지고, 건물과 마을이 눈에 파묻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학교가 눈 속에 갇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경우, 겨울철 재난에 대한 지방정부의 계획이 없다. 도(道)정부, 중앙정부의 완전한 계획도 없다. 여름철 풍수해에 대한 정부간 협력 체계는 있지만 폭설에 대한 체계는 미비하다. 폭설은 산이 높은 강원도에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서울이나 경기 서해안 지역에도 폭설이 있을 수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소방청이 자연 재난에 이 나라가 얼마만한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새 기구가 움직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생각으로는 현대 사회의 예고없는 게릴라식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자연 재난 대응 능력은 낮다. 그러나 미국도 80년대부터 대응 능력 높이기에 많은 노력을 집중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우, 새 소방청 창설을 통해 소방청이 단지 ‘불을 끄는 기구’가 아니라 재난에 대한 대응 능력이 완비된, 언제나 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구임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국토는 좁지만 인구로는 대국(大國)이요, 국부(國富)로도 세계 10위권에 있는 나라로서 재난 관리 능력도 대국다워야 하고, 세계 10위권에 꼽혀야 한다. 20~30년 사이에 농업사회로부터 산업사회·정보사회·서비스사회로 바뀌었지만 우리 국민의 인식은 아직도 농업사회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새 소방청이 국민들의 의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재난에 대한 보험제도의 확립과 예비비의 축적 및 활용으로 재난의 예방과 피해 규모의 최소화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유사시 복구 사업을 신속하고 견실하게 펼쳐야 한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재난 피해의 규모도 커진다. 그런 만큼 국민과 관계자들의 인식 또한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 폭설 재난은 2004년 3월, 100년 만의 눈으로 끝내자. 최연홍 (서울시립대 행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3.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