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란 영화 한편으로 현대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 올리는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얘기는 ‘구문(舊聞)’이다. 미국의 최대 수출산업은 이미 항공우주산업에서 문화산업으로 넘어갔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엄청난 부(富)를 창조하면서 세계 산업 판도를 재편하는 ‘폭풍의 핵’으로 등장한 것이다.
세계는 이미 문화전쟁에 돌입했다. 향후 10년 안에 세계경제의 주도권은 ‘문화 수출강국’이 거머쥘 것이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팀은 이런 인식 아래 미래 건설의 세 번째 실천대안으로 “100억달러 문화수출국이 되자”고 제안한다.
세계 문화산업은 현재 1조3000억달러 규모다. 이 가운데 특히 영화·음반·애니메이션·게임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산업은 일반 제조업의 두세 배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문화산업은 아직도 ‘구멍가게’ 수준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1% 남짓, 문화수출은 연간 10억달러에도 못 미친다. 2020년까지 시장점유율을 최소한 10%, 수출은 100억달러대로 끌어올리자.
그러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기획팀은 크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전국에 10곳의 「실리우드(실리콘밸리+할리우드=최첨단 문화산업단지)」를 건설하자. 문화수출의 전진기지로서 국제경쟁력 있는 문화상품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전문인력을 집중 육성하자는 얘기다. 둘째,한·중·일 문화블록(Bloc)을 구축하자. 문화적 친밀성이 있는 3국이 문화협력체를 건설해 동양적 문화상품을 차별화하고 세계시장을 함께 공략하자는 제안이다. ‘한류(韓流) 열풍’이 그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셋째, ‘문화 물류(物流)기지’ 역할을 할 ‘국립 문화번역원’과 ‘디지털 문화자료원’을 만들자. 우리의 고유한 문화콘텐츠를 실시간대로 번역하고 DB화해 세계에 전파할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하나씩 결실을 거둘 때 ‘세계로 열린 문화교역대국’이란 우리의 꿈이 실현될 것이다.
( 李濬기자 junlee@chosun.com )
문화수출 원동력인 感性인간 길러내자
개성과 예술감각 겸비한 인재 필요…‘한류열풍’전 세계로
한국이 21세기 문화강국(文化强國)이 되기 위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문화계 인사들은 ‘감성(感性)’이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사회의 원동력이 이성(理性)이라면, 디지털 정보사회의 경쟁력은 감성이다. 시대 조류가 ‘하이테크(기술)’에서 ‘하이터치(고감성)’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의 창출 근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감성인간’과 ‘감성산업’의 육성이 우리의 문화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한국인의 ‘감성 유전자’는 어느 민족보다도 풍부하다. 최근 중국 등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이 우리의 강한 감성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류’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2월. 지금은 해체된 댄스 그룹 H.O.T.의 중국 베이징 공연 때였다. 당시 H.O.T.의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직후 중국의 한 신문은 “한류가 중국을 강타했다”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한류 열풍’는 이어 TV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 전반으로 번져나갔다. ‘사랑이 뭐길래’ ‘별은 내 가슴에’ 같은 TV 연속극을 보면서 열광하는 중국인 동호모임은 ‘한미(韓迷·한국 매니아)’, 한국가요에 푹 빠진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합한족(哈韓族·한국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란 별칭이 붙여졌다.
중국과 동아시아 국민들이 ‘한류’에서 포착한 것은 ‘새로운 감성’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 대중문화가 할리우드식 미국문화와 사무라이식 일본 문화의 장점을 소화하면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색깔을 살렸다고 분석했다. 홍콩의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작년 6월 “한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맥도날드 햄버거가 중국 대륙을 퍼져나가는 기세와 다르지 않다”며 한류 열풍을 한국인 특유의 ‘불고기와 소주의 결합, 얼음과 불의 이중주’라고 비유했다. 추계예술대 김휴종(金烋鐘) 문화산업대학원장은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보다 감성적 선택이 중시된다”며 “감성으로 승부하는 문화산업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에는 한류를 ‘일시적인 연예인 해외 송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한류 열풍이 문화강국의 원동력으로 연결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진홍(鄭鎭弘) 교수는 한류를 “우리만의 농축된 감성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일시에 확산되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딴따라’로 불리는 문화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일단 중국 대중문화시장을 파고들어 새로운 문화수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만큼 한류는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제2, 제3의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다양한 감성 콘텐츠의 개발 노력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최근 ‘한류 지속화 방안 연구’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른바 ‘한류 산업’으로 방송·공연·음반·영화·애니메이션·패션· 게임·캐릭터·팬시·테마파크 등 10개 산업을 꼽았다. 지금까지 한류의 콘텐츠는 음반·영화 등이 중심이었지만 이를 패션·팬시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제안이다. 문화콘텐트진흥원
서병문 원장은 “영화·드라마·음반 산업은 언어와 인종(민족)의 한계가 있지만 게임·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은 ‘세계 공용’이기 때문에 문화적 거부감이 작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문화리더 역할을 할 ‘감성인간’들을 길러내는 노력이다. 이미 우리에게 감성세대의 푸른 싹이 자라나고 있다. 2020년 문화산업의 주역이 될 지금의 초·중등학생들. 이들은 공룡붐, 포케몬, 해리포터, 스타크래프트, 그리스로마신화(만화) 등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어려서부터 접하면서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감성훈련으로 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이른바 ‘신화적(神話的) 감성세대의 탄생’이라고 표현한다.
이화여대 중문과 정재서(鄭在書) 교수는 “이들 감성세대는 인터넷이란 온라인 공간을 통해 국내외의 문화 콘텐츠를 폭넓게 경험하고 가공함으로써 개성과 예술감각을 겸비한 문화리더로 커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세계 문화산업을 이끄는 견인차는 영화·애니매이션·음반·게임 등 4대 대중문화산업이다. 세계 문화산업은 대략 1조3000억달러선. 이 가운데 대중문화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5%(3200억달러)선이다. 한국은 전체 문화산업이 15억달러 규모로 세계시장의 1.2%에 불과하다. ‘돈이 되는’ 대중문화는 시장점유율이 더 떨어진다. 영화가 0.47%, 게임 0.48%, 애니메이션 0.36%. ‘한류열풍’으로 한껏 호조를 띤 음반산업도 고작 0.76%에 불과하다. 문화경쟁력으로 볼 때 한국은 아직 ‘후진 개도국’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가 일정 수준의 문화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강자(强者)와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문화산업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선진기술과 경영자산을 습득하자는 것. 특히 오랜 기간 하도급 생산에 머물러온 한국의 애니매이션 산업은 이제 독자적인 브랜드 구축과 상품의 차별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현대문학’ 영문CD롬 권영민교수
"언어장벽 넘어야 문화수출, 정부서 번역사업 지원해야"
문화수출 강국이 되려면 언어라는 ‘무역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국 문화를 꾸준히 세계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자료화하는 노력들이 축적되어야 한다. 외국은 이런 노력들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대 국문학과 권영민(權寧珉·54) 교수는 이런 ‘불모지대’에서 외롭게 문화 수출 인프라를 까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10월 ‘한국현대문학 100년’을 영문판 CD롬으로 발간했다. 원고지 500장 분량의 한국현대문학 개관과 문인 400여명의 연보·작품내용·사진 등을 담았다.
― 한국문화 수출과 디지털화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시장 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동안 우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외국과 경제협력이나 인재교류는 활발했지만 문화교류는 지극히 미미했다. 현재 세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정식 교육기관이 영어권만 300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중국, 중남미 등지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자 한 권 없는 상황이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전령사로서 ‘문학’을 택한 셈이다.”
― 제작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서울대 인문정보연구소 소속 학자 8명이 참여해 2년간 작업했다.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지만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학번역금고에서 1억원을 지원받고 개인적으로 5000여만원을 모금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국어도 잘하면서 우리 문학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번역가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최고 수준의 번역을 못하면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공염불에 그치기 때문이다. 외국 지인들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브루스 풀턴 교수 등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능통한 번역가 7명을 소개받아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 외국에서 반응은 어떤가?
“전세계 국공립 도서관, 공공기관 등 2000여곳에 무료로 CD롬을 배포했는데 한국문학의 체계적 정보와 자료에 목말라 하던 외국 연구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우리 문학의 저변확대와 해외 홍보에 한몫을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문인들의 영문 이름 철자가 기존 표기와 달라 당황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새로 바뀐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다 보니 기존 표기법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게 혼동을 준 것 같다. 국가 차원에서 표기법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 선진국들은 자국 문화 수출을 어떻게 하나?
“21세기 문화의 시대엔 바로 언어가 힘이고 권력이다. 문화의 기본 구성요소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부(富)를 창출하는 근간이다. 선진국들은 ‘말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정부가 주도해 만든 일본어 학습교재를 들고 전세계에 적극적으로 일본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또 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 문학작품을 연구·번역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무 작품이나 산발적으로 닥치는 대로 번역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 문화수출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언어로 번역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당분간 영문판 CD롬에 자료를 추가·보완하고 이 작업이 끝나는 대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그 다음엔 중국어·일본어 등 다른 언어로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하려면 최소한 10개 이상의 세계 주요언어로 우리 문화를 번역해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로 가자]100억달러 문화수출국 되자
전국 10곳에 최첨단 문화사업단지 건설해야
문화는 돈이다. 문화야말로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가진 미래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란 영화 한편으로 현대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 올리는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얘기는 ‘구문(舊聞)’이다. 미국의 최대 수출산업은 이미 항공우주산업에서 문화산업으로 넘어갔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엄청난 부(富)를 창조하면서 세계 산업 판도를 재편하는 ‘폭풍의 핵’으로 등장한 것이다.
세계는 이미 문화전쟁에 돌입했다. 향후 10년 안에 세계경제의 주도권은 ‘문화 수출강국’이 거머쥘 것이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팀은 이런 인식 아래 미래 건설의 세 번째 실천대안으로 “100억달러 문화수출국이 되자”고 제안한다.
세계 문화산업은 현재 1조3000억달러 규모다. 이 가운데 특히 영화·음반·애니메이션·게임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산업은 일반 제조업의 두세 배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문화산업은 아직도 ‘구멍가게’ 수준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1% 남짓, 문화수출은 연간 10억달러에도 못 미친다. 2020년까지 시장점유율을 최소한 10%, 수출은 100억달러대로 끌어올리자.
그러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기획팀은 크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전국에 10곳의 「실리우드(실리콘밸리+할리우드=최첨단 문화산업단지)」를 건설하자. 문화수출의 전진기지로서 국제경쟁력 있는 문화상품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전문인력을 집중 육성하자는 얘기다. 둘째,한·중·일 문화블록(Bloc)을 구축하자. 문화적 친밀성이 있는 3국이 문화협력체를 건설해 동양적 문화상품을 차별화하고 세계시장을 함께 공략하자는 제안이다. ‘한류(韓流) 열풍’이 그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셋째, ‘문화 물류(物流)기지’ 역할을 할 ‘국립 문화번역원’과 ‘디지털 문화자료원’을 만들자. 우리의 고유한 문화콘텐츠를 실시간대로 번역하고 DB화해 세계에 전파할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하나씩 결실을 거둘 때 ‘세계로 열린 문화교역대국’이란 우리의 꿈이 실현될 것이다.
( 李濬기자 junlee@chosun.com )
문화수출 원동력인 感性인간 길러내자
개성과 예술감각 겸비한 인재 필요…‘한류열풍’전 세계로
한국이 21세기 문화강국(文化强國)이 되기 위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문화계 인사들은 ‘감성(感性)’이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사회의 원동력이 이성(理性)이라면, 디지털 정보사회의 경쟁력은 감성이다. 시대 조류가 ‘하이테크(기술)’에서 ‘하이터치(고감성)’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의 창출 근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감성인간’과 ‘감성산업’의 육성이 우리의 문화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한국인의 ‘감성 유전자’는 어느 민족보다도 풍부하다. 최근 중국 등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이 우리의 강한 감성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류’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2월. 지금은 해체된 댄스 그룹 H.O.T.의 중국 베이징 공연 때였다. 당시 H.O.T.의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직후 중국의 한 신문은 “한류가 중국을 강타했다”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한류 열풍’는 이어 TV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 전반으로 번져나갔다. ‘사랑이 뭐길래’ ‘별은 내 가슴에’ 같은 TV 연속극을 보면서 열광하는 중국인 동호모임은 ‘한미(韓迷·한국 매니아)’, 한국가요에 푹 빠진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합한족(哈韓族·한국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란 별칭이 붙여졌다.
중국과 동아시아 국민들이 ‘한류’에서 포착한 것은 ‘새로운 감성’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 대중문화가 할리우드식 미국문화와 사무라이식 일본 문화의 장점을 소화하면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색깔을 살렸다고 분석했다. 홍콩의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작년 6월 “한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맥도날드 햄버거가 중국 대륙을 퍼져나가는 기세와 다르지 않다”며 한류 열풍을 한국인 특유의 ‘불고기와 소주의 결합, 얼음과 불의 이중주’라고 비유했다. 추계예술대 김휴종(金烋鐘) 문화산업대학원장은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보다 감성적 선택이 중시된다”며 “감성으로 승부하는 문화산업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에는 한류를 ‘일시적인 연예인 해외 송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한류 열풍이 문화강국의 원동력으로 연결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진홍(鄭鎭弘) 교수는 한류를 “우리만의 농축된 감성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일시에 확산되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딴따라’로 불리는 문화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일단 중국 대중문화시장을 파고들어 새로운 문화수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만큼 한류는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제2, 제3의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다양한 감성 콘텐츠의 개발 노력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최근 ‘한류 지속화 방안 연구’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른바 ‘한류 산업’으로 방송·공연·음반·영화·애니메이션·패션· 게임·캐릭터·팬시·테마파크 등 10개 산업을 꼽았다. 지금까지 한류의 콘텐츠는 음반·영화 등이 중심이었지만 이를 패션·팬시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제안이다. 문화콘텐트진흥원 서병문 원장은 “영화·드라마·음반 산업은 언어와 인종(민족)의 한계가 있지만 게임·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은 ‘세계 공용’이기 때문에 문화적 거부감이 작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문화리더 역할을 할 ‘감성인간’들을 길러내는 노력이다. 이미 우리에게 감성세대의 푸른 싹이 자라나고 있다. 2020년 문화산업의 주역이 될 지금의 초·중등학생들. 이들은 공룡붐, 포케몬, 해리포터, 스타크래프트, 그리스로마신화(만화) 등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문화콘텐츠를 어려서부터 접하면서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감성훈련으로 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이른바 ‘신화적(神話的) 감성세대의 탄생’이라고 표현한다.
이화여대 중문과 정재서(鄭在書) 교수는 “이들 감성세대는 인터넷이란 온라인 공간을 통해 국내외의 문화 콘텐츠를 폭넓게 경험하고 가공함으로써 개성과 예술감각을 겸비한 문화리더로 커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李翰宇기자 hwlee@chosun.com ) ( 李知炯기자 jihyung@chosun.com )
◆한국의 문화산업 규모 15억달러… 세계시장의 1%
최근 세계 문화산업을 이끄는 견인차는 영화·애니매이션·음반·게임 등 4대 대중문화산업이다. 세계 문화산업은 대략 1조3000억달러선. 이 가운데 대중문화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5%(3200억달러)선이다. 한국은 전체 문화산업이 15억달러 규모로 세계시장의 1.2%에 불과하다. ‘돈이 되는’ 대중문화는 시장점유율이 더 떨어진다. 영화가 0.47%, 게임 0.48%, 애니메이션 0.36%. ‘한류열풍’으로 한껏 호조를 띤 음반산업도 고작 0.76%에 불과하다. 문화경쟁력으로 볼 때 한국은 아직 ‘후진 개도국’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가 일정 수준의 문화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강자(强者)와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문화산업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선진기술과 경영자산을 습득하자는 것. 특히 오랜 기간 하도급 생산에 머물러온 한국의 애니매이션 산업은 이제 독자적인 브랜드 구축과 상품의 차별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현대문학’ 영문CD롬 권영민교수
"언어장벽 넘어야 문화수출, 정부서 번역사업 지원해야"
문화수출 강국이 되려면 언어라는 ‘무역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국 문화를 꾸준히 세계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자료화하는 노력들이 축적되어야 한다. 외국은 이런 노력들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대 국문학과 권영민(權寧珉·54) 교수는 이런 ‘불모지대’에서 외롭게 문화 수출 인프라를 까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10월 ‘한국현대문학 100년’을 영문판 CD롬으로 발간했다. 원고지 500장 분량의 한국현대문학 개관과 문인 400여명의 연보·작품내용·사진 등을 담았다.
― 한국문화 수출과 디지털화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시장 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동안 우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외국과 경제협력이나 인재교류는 활발했지만 문화교류는 지극히 미미했다. 현재 세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정식 교육기관이 영어권만 300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중국, 중남미 등지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자 한 권 없는 상황이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전령사로서 ‘문학’을 택한 셈이다.”
― 제작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서울대 인문정보연구소 소속 학자 8명이 참여해 2년간 작업했다.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았지만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학번역금고에서 1억원을 지원받고 개인적으로 5000여만원을 모금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국어도 잘하면서 우리 문학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번역가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최고 수준의 번역을 못하면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공염불에 그치기 때문이다. 외국 지인들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브루스 풀턴 교수 등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능통한 번역가 7명을 소개받아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 외국에서 반응은 어떤가?
“전세계 국공립 도서관, 공공기관 등 2000여곳에 무료로 CD롬을 배포했는데 한국문학의 체계적 정보와 자료에 목말라 하던 외국 연구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우리 문학의 저변확대와 해외 홍보에 한몫을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문인들의 영문 이름 철자가 기존 표기와 달라 당황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새로 바뀐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다 보니 기존 표기법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게 혼동을 준 것 같다. 국가 차원에서 표기법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 선진국들은 자국 문화 수출을 어떻게 하나?
“21세기 문화의 시대엔 바로 언어가 힘이고 권력이다. 문화의 기본 구성요소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부(富)를 창출하는 근간이다. 선진국들은 ‘말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정부가 주도해 만든 일본어 학습교재를 들고 전세계에 적극적으로 일본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또 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 문학작품을 연구·번역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무 작품이나 산발적으로 닥치는 대로 번역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 문화수출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언어로 번역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당분간 영문판 CD롬에 자료를 추가·보완하고 이 작업이 끝나는 대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그 다음엔 중국어·일본어 등 다른 언어로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하려면 최소한 10개 이상의 세계 주요언어로 우리 문화를 번역해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李敬恩기자 eun@chosun.com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