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군사대국화’ 시작되나 - 김경민
	2004-11-19
日 ‘군사대국화’ 시작되나 일본이 헌법 개정의 본심을 드러냈다. 특유의 장고 끝에 급기야 나타난 일본 지도부의 마음은 이제 은유적 표현으로도 감출 수 없는 일본의 진짜 속내를 알 수 있게 한다. 군사력 보유와 국제 분쟁 개입에 족쇄가 됐던 헌법 제9조를 개정하여 명실 공히 경제대국·정치대국·군사대국의 면모를 갖춘 강대국이 되어 보겠다는 야심이다. 평화주의만을 지향하는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마치 세뇌시키기라도 하듯 국제사회에 각인시켜 온 일본이, 강대국 일본을 지향한다는 속 마음을 숨기기에는 60년 가까운 세월이 목젖까지 찰 만큼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는 인상이 든다. 일본 자민당은 2005년 11월 자민당 독자 헌법안 초안으로 내놓을 예정인데 이 내용에는 기미가요를 국가로, 일장기를 국기로 한다는 내용과 함께 자위대를 대신하여 자위군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자위대가 자위군으로 달라지면서 그동안 헌법 제9조의 족쇄를 풀고 군사력 보유의 헌법적 정당성과 해외 파병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것이다. 군국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일본의 상징으로 부활시키려는 것이나 천황을 국가원수로 삼겠다는 발상은 이제 더 이상 과거사에 얽매여 눈치보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일본이 헌법 개정에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은 1990년대초 걸프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부터이다. 130억달러라는 거금을 내고도 인적공헌(人的貢獻)이 없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자 일본인들은 심리적 좌절감을 겪게 되고 그 때부터 헌법 개정에 대한 여론조사는 반대보다는 찬성이 많아지게 된다. 국민여론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헌법 개정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는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쓰라린 경험들로 평범한 일본인들도 진절머리나게 고통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을 경험한 전쟁세대들은 세월을 따라 사라져 가고 급속한 경제 성장과 세계 경제대국들의 주역들이 사회 전반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되자 경제대국에 걸맞은 강대국 일본을 꿈꾸게 된 것이다. 일본의 정당들도 달라진 여론을 바탕으로 헌법 개정에 적극 나설 조짐이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공명당 민주당의 협력을 얻어내면 중·참의원 찬동을 얻어낼 수 있고 그러면 국민투표 과반수 지지는 명약관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협력도 크게 작용한다.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있어 일본만큼 완벽한 파트너도 없다. 미국의 태평양 지배 전략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하와이를 본거지로 하고 서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동쪽으로는 도쿄 교외 요코스카를 연결하는 방어망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풍요한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는, 60년 세월 가까운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미국이 팔아 먹고자 하는 값비싼 무기의 최대 구매자가 일본이고 미국제 첨단무기의 정밀 부품을 잘도 만들어내니, 미국에 있어 일본은 매우 이상적인 파트너인 셈이다. 2005년은 우리나라로서는 해방 60주년, 한·일수교 4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은 세월의 힘을 빌려 전후에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던 헌법 제9조의 개정을 서두르고 있고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하며 동북아시아의 수장 역할을 겨냥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달라져 가는 동북아의 안보 질서가 중국과 일본의 세력 다툼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협력적 자주국방의 강화는 물론 동북아 평화 유지를 위한 전방위 외교가 절실함을 확인하게 된다.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를 계기로 동북아 군비 관리에 대한 대화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겠다. 김경민 (한양대 국제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1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