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없는 출자제한 - 노부호
	2004-11-16
세계에 없는 출자제한 市場이 평가할 문제들 정부의 규제 만능주의 기업의 타기업 출자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막고 있느냐에 대해 공정위와 재계가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재계는 삼성전자 등 출자 여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의 80%가 출자 여력이 있고, 그 규모가 20조원에 이른다고 반박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들의 투자를 막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공정위는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문제삼아 이 제도의 유지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기업의 소유주가 5%도 안 되는 개인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45% 가까운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환출자가 사회악(社會惡)이라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순환출자로 설립된 계열사는 원래 한 회사 내의 사업부로 존재할 수도 있는데,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서 분사(分社)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경영상의 문제이지 윤리적 문제는 아니다. 순환출자로 인해 발생하는 계열사 간의 재무적 위험은 금융시장이나 주식시장에서 적절하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공정위는 "5% 지분으로 45%의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문제 삼는데, 다른 55%의 주주들이 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위보다 더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하는 외국인들이 어지간한 국내 대기업의 지분 60%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내가 어느 회사에 투자한다면 그 이유는 지배구조상 사외이사(社外理事) 수가 많아서도 아니고, 계열회사 수가 적어서도 아니다. 좋은 경영을 하고, 그로 인한 장기적 경영 성과를 믿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다. '황제경영'은 세계 최대 기업인 GE의 잭 웰치도 했다. 황제경영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경영 성과로 판단해야 한다. 즉 가공(架空)자본이나 황제경영의 문제는 시장이 판단할 문제지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이라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를 통해 규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졸업 기준도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공정위는 지배구조 모범 기업, 계열회사 수가 5개 이하인 경우, 소유·지배 괴리도가 적은 기업 등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외이사 없이도 경영을 잘하고 있는 일본 도요타(豊田)의 사례에서 보듯 좋은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합의된 내용이 없다. 오히려 가장 좋은 지배구조는 좋은 경영을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계열회사 수가 적어야 한다는 논리도 그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문어발식 확장도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영국의 버진그룹은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하는 기업이다(Virgin is everything)"라고 하면서 문어발식으로 많은 계열 기업을 거느리고 있지만 성공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좋은 지배구조가 정착될 때까지 직접 규제한다는 원칙하에 3년 후에 가서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3년은 너무 길다. 정보화시대의 3년은 산업화시대의 30년과 맞먹는다. 또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외국인이 45% 정도 소유하고 있고,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감시 메커니즘이 상당히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한 이미 지적했듯이 좋은 지배구조란 합의된 내용이 없다. 공정위는 '좋은 지배구조의 정착'이라는 모호한 말 대신에 기업들의 경영 성과를 높이는 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자율이다. 노부호 (서강대 교수·경영학 / 시민회의 경영환경개선운동본부장) 출처 - 조선일보 2004. 11. 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