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 보다 ‘내수진작 정치’를 - 최창규
	2004-11-10
‘환율 방어’ 보다 ‘내수진작 정치’를 지난 1985년에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1182억달러, 경상 국내총생산(GDP)이 4조2203억달러였고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2.8%를 차지했던 상황에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플라자협정을 통해 달러화 약세를 유도했다. 하지만 2003년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5307억달러, 경상 국내총생산(GDP)이 11조40억달러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전체 GDP의 4.8%에 이르렀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수그러들기는커녕 2004년 상반기 경상수지 적자만도 3134억달러에 이르러 전세계 경제에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85년 플라자협정 당시에 비해 지금 더 심각한 상황이다. 상당 부분의 경상수지 적자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는 가운데 발생했으며 위안화가 달러화에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국 경상수지 적자의 해소가 쉽지 않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강화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 정부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 시기를 예상 밖으로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우리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의 약세 기조가 뚜렷해져 지난 석 달 사이 원·달러 환율이 약 5%가량 하락했다. 비단 원화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라 엔화, 유로화, 싱가포르달러화, 캐나다달러화에 대해서도 달러화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원화가 강세 기조로 접어들면서 상당한 혼란이 일고 있으나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달러화 약세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현재 충분하며 추가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 하락 억제는 여러 모로 어려울 것이다. 환율 하락, 즉 원화 강세 추세는 최근 해외로의 자본 유출을 다소 완화시켜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 가파른 추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시켜 줄 것이다. 물론, 달러 대비 원화 강세로 인해 대미 수출이 위축되고 또 위안화 절상이 늦어지는 만큼 우리의 대중국 수출이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출업계로서는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만 한다. 앞으로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할 경우 중국 경제의 급성장이 위축되고 이로 인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둔화가 우려된다. 그렇지만 중국이 오히려 위안화 절상을 통해 과열 성장을 잠시 식히고 연착륙에 성공하여 장기적·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만 있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원화 강세에 힘입어 금리 인하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내수침체의 진정한 원인은 다름아닌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에 있다. 진단과 처방이 다르다면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미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약 4%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내수 침체, 청년 실업과 더불어 물가 상승으로 힘든 상황이다. 부동 자금이 부동산 투기 등의 목적으로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자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즉, 돈이 기업 활동 쪽으로 몰리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국내에서 투자하려는 마음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우리 경제에 불필요한 거품만 키우게 될 것이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소비는 소비자가 하고 투자는 기업이 한다. 그리고 정부는 소비자와 기업이 안정된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면 되는 것이다. 요즈음 논의되고 있는 연기금을 통한 인위적인 경기 진작 정책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정책 운용에 있어 관치 정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미래 세대에 엄청난 후유증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 진정 내수 진작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경제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 정치 및 경제 면에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국내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직접투자 기업인들에게도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고 싶은 마음”을 북돋워 주는 일이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