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심 풀린 후방’이 더 문제다 - 남주홍
	2004-10-28
경계심 풀린 후방’이 더 문제다 중부전선 철책에 구멍이 뚫려 우리 군에 비상이 걸렸다. 군 당국은 정밀조사 결과 “신원 미상의 민간인이 월북한 것 같다”고 발표했지만 미심쩍고 걱정스러운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 미심쩍은 점은 현지 지형과 철책 구조 그리고 지뢰지대 분포를 잘 아는, 고도로 훈련된 특수요원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2㎞의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걱정스러운 점은 3중의 주철책과 보조철책이 뚫리도록 2시간 동안 우리 군은 경계와 순찰을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다. 물론 우리 군은 대부분의 주어진 기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후방의 해이해진 안보의식과는 달리 그래도 우리 군만은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에서 보았듯이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뜻에서 이번 군 당국이 발표한 내용은 일단 믿고 싶다. 그러나 단순한 월북사건으로만 간주할 것이 아니라 공작원이나 간첩의 침투 및 복귀 가능성도 염두에 둔 보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며 이번 기회에 경계순찰 임무 전반에 걸친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불특정 민간인이 임의로 무단침입·탈출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기에 일단 대간작전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은 지난 수년 동안 수십 차례 북방한계선(NLL)을 유린했고 급기야 제한적인 정규전까지 도발한 바 있다. 그래서 해상의 초계태세에 이어 이번에는 육상의 경계태세를 시험해 보려는 의도는 없었는지 전술·전략 차원의 면밀한 분석도 있어야 한다. 북한이 걸프전과 아프간전 그리고 이라크전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면 현대식 첨단 전자전에 정면승부를 걸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라는 일종의 자괴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 지도부는 90년대에 들어서부터 부쩍 옥쇄식 선군사상을 강조하면서 핵무장을 서두르는 한편 비정규전 중심의 특수전 능력과 간접침략 공작 보강을 서둘러 왔으며 이에 대남 전략의 거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해 왔다. 이에 비해 우리 군은 그간 교조적인 햇볕정책 후유증 탓인지 주적 개념 설정 문제로 정훈교육에 차질을 빚으며 ‘국방백서’조차 제대로 발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장성급회담 단 한번으로 전방의 대북 선전용 확성기를 철거하는 ‘양보’도 했고 심지어 NLL을 침범하는 북측 함정에 가급적 선제발포를 자제하라는 ‘지침’까지 받은 상태다. 한 마디로 이번 철책선사건은 이러한 대적 의식 약화에 따른 경계심 이완현상이 아닌지 차제에 철저한 자성이 필요하다. 즉, 이 사건으로 해당 부대 지휘 라인을 문책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 전체의 정신전력을 재점검하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의선이 연결되고 개성공단까지 직진도로가 생기며 금강산 육로관광이 실시되는 마당에 철책선을 지키는 젊은 병사들의 대적관이 도전받은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후방에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북한을 아예 반국가단체에서 제외시키려는 정부의 뜻이 확고한데 어떻게 전방의 군인들에게 “때려잡자 공산당”식의 대적 의식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군·경·검 및 국정원의 대공수사 실무진들은 만약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여당안대로 형법 보완으로 끝나면 대공수사도 사실상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찬양고무죄가 없어져 비폭력적 공산당 활동은 이른바 ‘학술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되기 때문이다. 제2, 제3의 송두율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금 전방의 철책선이 뚫린 것이 아니라 후방의 대공전선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진정한 교훈이다. 만약 이러한 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군만 탓한다면 우리는 전후방 모두가 흔들리는 최악의 경우에 처할지 모른다.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자주국방에 분명한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뜨거운 국민들의 신뢰와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0. 2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