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分法'의 쟁점정치를 - 박효종
	2004-10-19
'3分法'의 쟁점정치를 열린우리당이 17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로 확정하고 과거사 관계법안, 사립학교법개정안, 언론관계법개정안 등 이른바 ‘4대개혁법안’을 확정했다. 20일엔 문제의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하고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시킬 계획임도 밝혔다. 한나라당은 “국가체제를 거스르고 있고 국론분열을 더 깊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실력 저지를 다짐하고 나섰다. 이제 4개 법안을 놓고 여야가 마주 오는 열차처럼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첨예한 여야 대치에 대하여 의문이 있다. 민주정치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을 두고 두 편이 충돌하는 상황은 일반적 현상일까.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서로 힘을 겨루고 있다. 또 응원도 두 편으로 나누어 벌어진다. 두 편 사이의 다투기는 이솝우화에서도 돋보인다. 여우와 두루미가 서로 경쟁과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는가 하면, 부지런하지만 인색한 개미와 ‘웰빙’ 생활을 좋아하지만 자기관리에 소홀했던 배짱이가 복지제도의 타당성을 놓고 다투고 있다. 또 뱁새와 황새가 도망가며 쫓아가기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토끼와 거북이도 달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번 대치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여야가 4개 법안에 대한 입장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면서 ‘배수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수진’ 전략은 이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선택을 강요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가 핵심이기 때문에 협상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지금 ‘개혁이냐, 개혁 후퇴냐’ 혹은 ‘국가정체성 수호냐 상실이냐’의 이분법을 강요하고 있는 여당과 야당의 모습이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이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황당한 이분법적 발상과 표현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이 절망적이라고 할 만큼 너무나 저급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당과 야당의 일방적이며 편향된 집단적 사고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이분법에 불과한 것일까. 이 세상에는 선 아니면 악, 진리 아니면 거짓, 행복 아니면 불행, 삶 아니면 죽음, 광명 아니면 암흑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동녘 하늘에 해가 솟아오르기 직전의 여명(黎明) 혹은 새벽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제3의 범주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볼 때 두 가지 쟁점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야는 각기 선호하는 대안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도양단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개혁’과 ‘수구기득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적 보수’나 ‘중도적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보안법 존치’ 이외에도 ‘국가보안법 부분개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친일파 과거사 규명’과 ‘친일파 과거사 규명 반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과거사 규명 유보’ 입장도 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분출하는 정치 쟁점들이 ‘이항(二項)대립’보다 복잡하다고 볼 수 있다면, 여야가 4개 법안에 대하여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며 대립의 각을 세울 일이 아니다. 여야 쟁점의 ‘이분법’은 반드시 ‘삼분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원주의사회’에는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하고 적대적 관계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두 집단만 존재한다면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제로섬의 상황이 실제적이다. 쟁점을 ‘삼분법’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상극의 상황’에서 벗어나 협상과 절충이 가능할 수 있다. 지금 여야가 4개 법안의 쟁점들을 ‘2분법’이 아니라 ‘3분법’, 혹은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다면 적어도 정치적 파국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여야가 ‘2분법 쟁점’을 ‘3분법 쟁점’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와 아량, 정치력을 발휘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4. 10. 1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