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등급제'에 부쳐 - 이성호
	2004-10-18
'고교 등급제'에 부쳐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구에 회자되는 용어 중의 하나가 바로 ‘고교 등급제’라는 것이다. 우선, 이 용어 자체는 현실을 왜곡하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소지가 많다. 우리가 언제 고등학교의 석차를 매기고 등급화하는 공식적인 제도를 가진 적이 있었는가? 과거 고교 입시제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고교의 등급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결정하는 것이었지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일부 대학의 수시 모집에서 나타난 현상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교 등급제가 아니라 고교 평가 혹은 차별화이다. 그런데도 특정 언론이나 교사 집단, 그리고 시민 단체들이 이를 ‘고교 등급제’로 몰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한 술 더 떠 교육부는 이러한 행위를 불법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보면, 사회의 일부 세력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 구심마저 강하게 든다. 용어의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교육부의 입장은 고교 평가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학교 간, 그리고 지역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과외를 부추긴다는 것이 이를 규제하는 낯간지러운 ‘명분’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그렇다면 학교 내에서 하는 학생 평가는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과외를 부추기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대학 평가는 왜 허용하는가? 대학 간의 위화감은 사회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인가? 어째서 한 쪽은 ‘경쟁력의 제고’이고, 다른 한 쪽은 ‘사회 분열’인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고교 간의 비교에 있어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교육부가 인허한 몇 안 되는 입학 사정의 잣대인 수학 능력 시험 점수였다. 대학이 학생 선발 시 개개인의 능력을 변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학교 전체를 비교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어째서 부당하다는 것인가? 수학 능력 점수에 따른 학교 간의 편차는 이미 많이 인용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재론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일부 교사 집단이 주장하는 대로 ‘그깟 수능 점수 몇 점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기도 하다면 이야말로 자가당착도 보통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시험은 무엇 때문에 실시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왜 입학 사정에 반영해야 하는가? 이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결국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사회의 일각과 교육부의 생각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해 학력을 기준으로, 아니 지적 능력을 기준으로 학생을 변별하는 것은 수능 점수와 내신 이외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부의 속마음인 것 같다. 이러면서 학생 선발의 자율성 운운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내신의 공신력은 이미 거의 코미디 수준이고, 수능 마저 변별력이 약화되어 간다는 것이 평가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대학들은 ‘적성’이니 ‘논술’이니 하는 편법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나마 교육부의 서슬이 시퍼런 감시의 눈에 시달린다. 소위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주지교과에 대한 학력 평가의 성격을 띤 것은 절대불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과목들을 가! 르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가? 물론, 학력은 곧 지적 능력이라는 등식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학력이 지적 능력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제 맺는 말 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업적제’, ‘성과급제’, ‘능력별 차별화’ 등등의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제 이들이 제도로서 정착되어 가고 있다. 같은 직장 입사 동기들 사이에도 연봉이 다르고, 승진 속도 또한 다르다. 결국 능력의 개인차를 사회적으로 용인한 결과이다. 그런데 유독 교육 분야에서는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관의 적극적인 주도와 일부 정치 세력의 개입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인가? 특히 교육부에 묻고 싶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교육부서가 주관이 되어 학교의 책무성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개별 학교에 상벌을 내리고 있다. 교육의 수월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이 두 나라는 자본이나 ? 悶?그리고 기술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나라들이다. 그런데 가진 것이라고는 인적 자원 밖에 없는 나라의 교육부는 수월성의 제고와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 시민회의 교육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