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 ‘3不’ 재확인 유감 - 박효종
	2004-10-15
교육부총리 ‘3不’ 재확인 유감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어제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고교 학력차 반영, 본고사, 기여입학제 불가 등 정부·여당의 ‘3불(不)’방침을 재확인했다. 또, 대학과 고교간 교육과정 연계강화와 상호 신뢰 회복을 위해 대학·고교·학부모 대표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겠다고도 밝혔다. 오늘자 조간 신문은 고교 내신성적 부풀리기를 보여주는, 어느 사립대학 수시 1학기 지원자의 내신 분석 자료를 보도하고 있다. 충격적이다. 실상이 이런데 이 담화가 대입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겠는가. 실타래처럼 엉킨 교육 현실을 담화 하나로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고 국민 모두가 교육전문가로 자부하고 있다. 또, 국민 모두가 이해 당사자이기도 하다. 특히, 대학입시 문제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학생은 많고 원하는 학생을 받아들일 ‘좋은’ 대학은 많지 않다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조정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 정부다. 정부가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뭇잎’이 아닌 ‘나무’ 전체를 볼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부분보다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국가경쟁력, 대학경쟁력, 공정성, 평등권, 하향평준화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정부나 교육부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정부가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양한 가치와 권리가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에 대해 ‘법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이다. 여론 수렴이라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면서 정책을 정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전교조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 말고 특별한 것이 있는가.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전교조가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대학 자율을 말하면서 ‘3불’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모순 어법이 아닐까? 자율이란 결정권이고 결정권이란 다수의 대안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정부가 정말 자율을 말하고자 했다면 대학입시의 커다란 테두리만 정하면서 구체적 방법은 대학이 알아서 하라고 해야 한다. 정부가 ‘북극성’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옛날에 뱃사람들은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북극성을 가지고 방향을 정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대학에 방향을 정하는 일을 넘어서서 시속 몇 노트로 가야 하고 어떤 섬은 반드시 지나야 한다는 등, 선장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좁쌀영감’처럼 할 바에는 차라리 추첨제 입학을 시행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물론 민주사회에서 평등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기계적 평등’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국요리 집에 들어가 모든 사람이 같은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면, 황당한 일일 뿐, 평등의 실현은 아니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서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하려면 경쟁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경쟁이 갖는 장점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오죽하면 가을의 단풍까지도 더 곱게 물들기 경쟁을 할까. 설악산의 단풍과 지리산의 단풍은 다르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교육 문제를 ‘강남―비강남’ ‘가진자―못 가진자’의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적과 동지,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밤과 낮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벽도 있다. 동틀 무렵의 여명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다. 천국과 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옥도 있다. 사회를 이항(二項) 대립으로 몰고 가면, ‘이원주의’ 사회가 된다. 모든 것이 둘로 나뉘는 ‘이원주의’ 사회는 갈등과 대립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대안은 다원주의 관점에서 교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 모든 정책을 이분법적인 갈등 구조로 접근할 때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4. 10. 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