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인력을 확충하자 - 정진영
	2004-10-08
외교인력을 확충하자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자주외교이다. 미국 의존 외교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정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 이야기다. 누가 들어도 부정하기 힘든 한국외교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런 요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들이 사용한 북방외교, 외교 다변화 등의 말들이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외교통상부가 주도하여 만든 일련의 중장기 외교전략 보고서들도 같은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자주외교는 말로만 할 수 없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자주외교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된 상황에서 외교통상부의 무능과 무사안일을 비난한다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외교통상부로 하여금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증대하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외교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임종석 의원이 제시한 해결방안이 관심을 끈다. 임 의원은 한국외교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한국외교의 총량’을 먼저 확대하여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새로운 균형을 찾자고 제안하고 있다. 외교총량 확대 방안으로 그는 외교부의 인력을 대폭 증원하고 차관과 차관보 보직도 현재의 각 1명에서 3명과 6명 정도로 늘리자고 제안한다. 또한 다양한 외교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민간전문가들의 활용이 용이하도록 외교관 충원 방식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외교는 지금껏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4강 외교에 집중돼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대외적 환경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를 ‘편중외교’라고 비판하는 임 의원의 입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이익을 세계적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정도로 국력이 증대했고 국익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외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감한다. 외교 일선에서 뛰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소방수에 비유하곤 한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소방수가 불 끄러 달려오듯 달려가 해결해야 하는 3D 직업이라는 뜻이다. 외교관들의 이러한 자조적인 비유는 외교관 개인들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현실 국제관계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껏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우리 국력을 제대로 투사해본 적이 없다. 대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대가를 치를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이런 나라의 외교관이 국제무대에서 무슨 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외교역량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임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외교 인력을 확충하고 예산을 증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3분의 1 크기인 네덜란드보다도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험난한 동북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통상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민간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대폭 늘리는 것도 시급하다. 국제정세에 관한 다양하고 심층적인 정보가 우리 사회에 풍부히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언론기관들조차 외국 언론의 기사를 받아쓰는 나라에서 주체적인 외교역량이 발휘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외전략에 관한 국민적 합의 형성을 위한 노력이다. 대외정책이 이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구실이 된다면, 어떤 나라의 외교부도 외교 역량을 대외적으로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진영 (경희대교수.국제관계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10, 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