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편향' 정부가 진위가려라 - 권대봉
	2004-10-06
'교과서 편향' 정부가 진위가려라 고교생을 위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에 “북한의 역사를 미화하고 한국의 역사를 폄훼”한 내용이 있다고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자 여당은 “문제 없다”, 야당은 “문제 있다”며 싸우고 있다. 과거에 일본에서 역사교과서 파동이 일어났던 원인은 일본 정부가 ‘침략’이란 말을 ‘진출’이란 말로 바꾸도록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침략이란 말 대신에 진출이라고 미화한 이유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일본관을 심어주고 국민을 하나로 뭉쳐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고구려사를 한국 역사로부터 떼어 내어 중국 역사로 편입한 것은 역사 테러이며, 이 역시 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함이다. 일본과 중국이 한국 관련 역사 왜곡을 통해 자국민들을 뭉치게하여 강한 나라 만들기 경쟁을 하고 있는 지금, 한국은 역사 교과서의 편향적인 기술의 진위를 둘러싸고 국민을 분열시켜 약한 나라 만들기를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짓는 것이요, 역사 이외에 무슨 딴 목적을 위해 짓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으로 사회의 유동상태의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그대로 적은 것이 역사요, 저작자의 목적을 따라 그 사실을 좌우하거나 덧붙이고 혹은 달리 고칠 것이 아니다”라고 갈파했다. 단재는 역사 기록 자체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편향돼서는 안되며, 교육을 편향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는 김대중정부의 마지막 교육부장관이 부총리로 재직하고 있던 시기에 검정을 통과한 것이다. 해당 교과서의 검정 통과에 대한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현재 논쟁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2년 8월 1일 당시 교육 부총리는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하여 “일부 교과서가 상당한 정도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수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고, “당대의 역사 기술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뒤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이 편향적인 인사들을 검정위원으로 선정하여 정부의 검정을 통과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그는 “검정 통과에 어떠한 문제점도 없었으며 외부의 힘이 의도적으로 작용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그때 야당 대표는 “역사 교과서 왜곡은 국기 문란 행위”라며 당내 진상조사특위 구성과 국정조사 검토를 지시했다. 여당은 “과거 정권은 물론 현 정권에 대한 공과는 균형 있게 기술해야 한다”면서도 “야당의 배후 조사 지시 주장 등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고 반박한 바 있지만, 여야 모두 후속 조치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대통령도 바뀌고 교육부장관도 바뀌어 2년이 지난 지금 역사 교과서 문제로 또 다시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당시 교육부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한 대로 지적됐던 교과서 내용을 제때에 수정하였더라면 지금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교육부장관이 정권 차원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직무를 수행해야 교육의 백년대계가 제대로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역사 교과서가 야당의 주장대로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 업적이 한국과 비교하여 더 우위에 있는 것처럼 기술되었는지, 아니면 여당의 주장대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았는지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로 편향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교과서 문제를 정부가 방치한다면 국론은 분열될 것이고 나라는 허약해질 것이다. 정부는 당장 문제가 된 역사 교과서 내용이 편향적인지 아닌지 그 진위를 가려서 국민들의 의혹과 학부모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책무가 있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0. 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