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逸 통일 14년, 새 분열로 - 박성조
	2004-10-04
獨逸 통일 14년, 새 분열로 통일 14주년, 베를린 장벽 붕괴 15주년을 맞는 독일은 통일의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 ‘월요데모’.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의 직접 원인은 라이프치히시(市)의 월요데모였다. 동독인의 처음 구호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였고, 나중에는 “우리는 국민이다”로 바뀌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찾아 자유를 탄원했다. 1990년 10월, 염원은 이루어져 독일 통일은 완성됐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개천절이 독일인의 개국일이 되었다. 15년이 지난 오늘 동독에서는 또 ‘월요데모’가 한창이다. 오늘의 구호는 ‘자유’가 아니다. 슈뢰더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개혁(하르츠Ⅳ : 실업보험과 최저생활유지보조를 후자 쪽으로 융합)에 반대하는 것이다. 두 월요데모에 차이가 있다면 1989년에는 ‘독재로부터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2004년에는 세계화 경쟁의 핵심인 ‘자유간의 경쟁을 위한 것’이다. 통일은 다시금 분열을 갖고 왔다. 제도적 통일은 완벽했지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특히 정신적 차원에서는 조만간 결합될 수 없는 벽은 더욱 굳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통일정책의 밑바탕에 동족이라는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막연한 개념을 아무런 검증없이 깔았다는 사실이다. 그간 동독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키워졌다. 그러나 동독인에 관한 심층적인 지식의 결핍은 ‘체계적인 통일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게 했고, 장벽이 무너지자 정치인들은 동독을 ‘자기의 표밭’으로 만드는 데 아무런 양보도 없었다. 서독의 민주주의자는 동독인에게는 권력과 사리(私利)에 탐닉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서독 민주주의와의 첫 경험은 너무나 실망이었다. 콜 총리가 통일 당시 가장 서둘렀다. 그는 빠른 시일 내 ‘동독을 번성하는 경제지역’으로 만들 것을 약속했으나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동독인이 생각했던 자유는 구체적으로 ‘여행, 가전제품, 자동차’에 국한됐다. 자유를 창의성, 노력과 생산에 연결하지 않고 ‘서독의 부’를 향유하는 데 열중했다. 경제의 번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실업률은 18%(서독은 9%)에 달하며, 구 동독지역인 작센안할트는 10명 중 두 사람꼴로 실업자다. 적어도 10년 이상 계속될 동독으로의 막대한 재정원조가 동독 경제부흥에 절실한 산업구조 구축에 괄목할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는 없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최근 연방대통령 쾰러는 “동독인은 절약하고 정부에 큰 요구를 하지 말라”고 했다. 동독인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분노하면서 “쾰러는 역시 서독 사람”이라고 핀잔했다. 동독인은 슈뢰더의 사회개혁에 반대한다. 서독의 사회보장제도가 동독에 정착하기도 전에 추진되고 있는 사회개혁이 동독을 빈민촌으로 만들 것이라고 동독인은 말한다. 그들은 소외되고 버림받고 착취되어 서독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베를린 자유대교수 프리츠 필마는 말한다. 따라서 동독인은 옛날을 동경한다.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서)독일인이 아닌 동독인, 더욱 순수한 독일인”이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 속에는 ‘순수한 사회주의에 입각한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열망과 ‘독일은 독일인에게’라는 낭만적 국수주의가 무질서하게 혼합돼 있다. 때문에 지금의 ‘월요데모’에는 극좌와 극우가 손잡고 행진하는 괴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20세기의 기적’이라 알려진 ‘독일 통일’이 나날이 심화되는 분열을 직시하면서 “서독은 동독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동독 출신 연방국회의장 볼프강 티에르제는 주문한다. 통일에 필요한 것은 제도·조직·돈에 앞서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통일의 실험장 독일은 우리 통일정책의 밑바탕을 재음미하도록 촉구한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정교수 서울대 초빙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4. 10. 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