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원회’ 내실화 시급하다 - 이달곤
	2004-09-16
정부 ‘위원회’ 내실화 시급하다 필자는 교수 신분으로 정부의 여러 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서 위원회의 수가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과 행정 서비스의 전달 과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손쉬운 것이 정식 정부 관료제 외곽에 위원회를 만들고 이른바 민간인을 앉혀서 그 목소리를 관료제 내부로 전달시키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통령선거 참여 지식인들의 참여를 계속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대통령 주위에 대통령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예가 없지만 이미 유행이 됐다. 대통령이 국정 어젠다에 치중하고 내각 운영을 총리에게 전담시키는 구도에 따른다면 대통령 주변에 몇 개의 위원회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물론 그러한 경우에는 정부 조직에 대한 수술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주위에 기본적인 국정 방향을 결정하고 정책결정 사항을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서 집행단계에까지 개입하는 위원회를 다수 유지하는 것은 정부조직 관련 법과 실적제 공무원 제도의 취지는 물론이고 나아가 헌법의 3권 분립이라는 기본 정신을 훼손할 위험이 없지 않다. 국가의 주요한 정책 방향은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며, 집행부인 행정부에서는 내각이 집행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그 일에는 실적에 의한 공무원이 동원돼야 한다. 문화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 주위의 위원회가 22개이고 그 예산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상 국가에서는 구조적 측면과 운영적 측면의 공식 시스템을 내실 있게 제도화하는 것이 목표다. 대통령도 이 점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 의해 좌우되고 기존의 공식 정부 구조를 우회하는 불안정한 위원회를 대통령 주위에 두게 되면 집권적인 논의가 전개될 가능성이 짙고 내각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아울러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위원회를 조직하여 안정된 상태로 운영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고 시간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위원장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위원들의 헌신과 관련 부처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과 거리가 먼 위원회의 주요 결정이 필수적인 정보를 얻지 못하여, 혹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아 관련 부처를 혼란에 빠뜨리고 실적 공무원의 업무에 혼선을 주며 공직자를 실망시키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예산을 적지 않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예산의 사용은 위원회의 존재 필요성과 활동의 내실이 입증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경직된 예산 지출 규정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외양적 성과에 급급한 형편이 문제다. 계속되는 회의와 세미나로 활동이 채워지고, 게다가 바쁜 위원들의 일정으로 제대로 된 체계적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현실도 이제는 극복돼야 할 것이다. 어떤 위원회는 자체 전문성이 부족하여 대통령 보고서를 외부 인사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너무나 많은 부처 수와 다층 구조의 형식적 조정 기구로 시달리고 있고, 정책 문제의 부분적 접근과 살포식 예산 사용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핵심부를 개선함으로써 해결되지, 땜질식으로 위원회를 추가하는 방법으로는 어렵다. 구성 요소가 복잡하고 기능별로 유기적 정렬이 되어 있지 않은 시스템은 요란한 소리에 비해 성과는 없다. 이달곤 (서울대 정책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9.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