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과 '위협 인식'의 共有 - 김일영
	2004-09-16
동맹과 '위협 인식'의 共有 동맹은 두 나라가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때 생겨난다. 다시 말해 두 국가가 위협을 느끼는 공동의 적을 지닐 때 동맹이 형성된다. 9·11 테러 이후 한국과 미국은 위협 인식의 공유 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한·미동맹이 표류하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냉전하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동맹을 유지해 왔으며, 그 중심에 인계철선 역할을 자임한 주한미군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전 세계적 차원에서는 탈냉전이 도래했다. 그러나 한반도 차원에서는 북한의 핵 모험 때문에 주한미군이 냉전시대의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한· 미 양국은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세상, 특히 미국은 너무 변했다. 미국은 테러 공격,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중국의 패권화를 주된 위협으로 보고 있다. 이제 북한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국가로서만 미국에 의미가 있지, 과거처럼 한국에 대해 위협을 가하는 국가로서의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 또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미국은 지금 전쟁 중인 국가라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테러 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인 미국에 여타 문제는 중요성 면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재배치하는 것은 이런 세 가지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은 과연 미국과 어떤 위협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가? 테러 위협에 대해 한국이 느끼는 불안은 미국이 느끼는 그것과 비교할 때 온도 차이가 크다. 최근 테러가 러시아 등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국가들에까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은 이라크에 추가 파병함으로써 이미 반(反)테러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런데도 테러 위협에 대한 한국 국민의 체감도는 아주 낮다. 중국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에서 중국 견제에 대해 한·미 간에 느끼는 공감의 정도도 차이가 있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 움직임 때문에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에 변화의 기미가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중국에 대한 섭섭함을 누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을 위협보다는 포용과 공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미국과의 협상용이며 그것을 동족인 우리에게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세태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하는 제재, 예컨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에 한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점은 미국이 직면한 세 가지 위협에 대해 별로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현재 한국의 파워 블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 한·미동맹은 표류하고 있다. 위협 인식 면에서 공감보다 차이가 더 큰 동맹은 유지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양국 간에 위협 인식 면에서 공감대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는 한국이 이라크에 추가 파병함으로써 미국과 위협 인식을 같이 하려는 노력을 일부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자신들이 발을 들여놓은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지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확신이 없는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동맹의 어려움은 거기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9. 1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