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한민족경제공동체' - 정진영
	2004-09-14
불안한 '한민족경제공동체' 중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가 매우 활기를 띠고 있다. 북한의 소비재 수입과 생산, 그리고 백화점 등의 유통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의 투자가 두드러지게 증대하면서 북한이 중국 경제권에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 이러한 견해는 중국이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설득력을 얻는다. 2003년 북한과 중국 사이의 무역규모는 10억2000만달러였는데, 이는 북한 총무역액 23억9000만달러의 42.8%에 달하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3억9000만달러를 수출하고 6억3000만달러를 수입했다. 북중 간의 무역이 급속히 증대하면서 북한과 다른 나라들의 무역을 대체하는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북한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는 대북 경협을 촉진해 북한을 포함한 한민족경제권을 형성하려는 비전을 가진 우리에게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한국의 대북 교역은 반입(수입) 2억9000만달러, 반출(수출) 4억3000만달러로 총 7억2000만달러였다. 우리가 북한의 제2 교역상대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는 과장돼 있다. 대북 교역의 44%는 무상지원과 같은 비거래성 교역이지만, 이것이 반출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대북 투자의 경우 2003년 말 현재 6억달러가 예정돼 있지만 2억달러 정도만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건립에 집중돼 있다. 중국이 북한의 소비재와 유통사업 부문으로 파고드는 데 비해 우리의 참여는 지역적으로 외진 곳에 북한 주민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특구식 개발에 제한돼 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는 익히 알려진 대로 막강하다. 그리고 석유와 식량의 주요 공급국으로서 경제적 영향력도 막대하다. 여기에 북한의 개혁·개방에 따른 교역과 투자의 기회마저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이를 통해 북한과 간도지방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중국이다. 여기에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이 중국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주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꿈꾸는 한민족경제권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중심의 중화경제권에 우리마저 편입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북 경협을 추진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북한을 보다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이에 따른 위험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체제 붕괴를 걱정하는 북한 당국이 한국 기업들의 진출 증대를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영향력 경쟁은 북한당국의 판단에 좌우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한민족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당국이 자신들의 권력과 체제 유지에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남북 협력보다 정치적으로 안전한 북중 협력을 선호하면 북한은 점점 더 중국경제권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당국이 우리에 대하여 그토록 강조하는 ‘민족공조’의 정신을 스스로 실천한다면 한민족경제권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남북 교역이 대북 지원과 같은 비상업적 거래에 치우치고, 북한과 거래하는 다수의 기업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방식으로는 남북 경제 교류와 협력은 심화될 수 없다. 북한당국이 우리와의 경제협력 증대를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중국 기업들에 안방을 내준다면 한민족경제공동체는 한낱 꿈에 그칠 것이다. 북한당국은 우리에게만 민족공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정신을 실천해 보여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교수·국제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9.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