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관치금융 부활하나 - 안재욱
	2004-09-13
新관치금융 부활하나 금융감독위원회는 10일 국민은행의 회계처리기준 위반 등과 관련해서 김정태 행장에게 ‘문책적’ 경고 수준의 중징계를 최종 확정했다. 은행업 감독 규정에 따르면 ‘문책적’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경우 3년 동안 은행의 임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김 행장은 다음달 30일 임기가 만료된 뒤 연임할 수 없게 된다. 김 행장이 중징계를 받은 명시적인 이유는 국민은행이 국민카드와 합병하면서 국민카드의 이월결손금을 승계 받아 법인세를 아끼기 위해 편법적인 방법으로 합병회계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카드는 국민은행에 합병되기 이전에 1조3000억원의 이월결손금을 가지고 있었다. 부실법인을 흡수 합병할 때 부실법인에 누적된 손실을 이월받아 절세 효과를 보는 것은 관행이며 법적으로도 허용돼 있다. 현행 기업합병제도에서 피합병법인의 누적 결손금을 이월받기 위해서는 피합병사의 주식수가 합병사 총 발행 주식의 일정 비율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국민은행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민은행은 이월결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국민카드에서 대손충당금을 설정하고 그 나머지 부분을 국민은행에서 추가로 충당하는 회계처리 방법을 택했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국민은행의 회계처리가 ‘명백한’ 회계처리기준 위반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이 그 방법을 따른 것은 국세청, 회계법인, 그리고 법무법인이 적법하다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국민은행의 회계처리 위법성이 은행장을 퇴진시킬 만큼 중대한 잘못인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민은행의 회계 파문은 모호한 회계기준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모호한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는 사안에 대해 금융 당국이 중징계를 하면 시장에서는 그것을 적법한 조치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은행장 길들이기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 동안 김 행장은 이른바 관치금융을 거부해 왔다. 지난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 지난해 SK글로벌, 그리고 올해 초 LG카드에 이르기까지 정부 주도의 회생안에 반대해 왔다. 이번 조치가 지금까지 그의 행동에 대한 금융 당국의 ‘손보기’ 차원의 결정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관치금융이 금융기관을 부실하게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경험한 바다.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결코 향상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례로 정부의 ‘지엄한’ 요구를 내놓고 반대할 은행이 있겠는가. 은행의 경영자들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여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임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융 당국자들의 동태에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상업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라 운영될 것이다. 은행이 상업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운영되면 우리는 또 다시 금융 시스템 붕괴라는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이번 사례의 또 다른 부정적인 면은 우리 금융 시스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도 하락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민영은행도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될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 감소할 것이고 금융산업의 발전이 늦어질 것이다. 최근 관치금융의 형태가 명시적인 형태에서 점점 암묵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관치금융의 정당성이 입증되지 못하자 건전성과 투명성이라는 명분 아래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건전성과 투명성이 문제라면 분명한 규칙과 회계기준을 입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분명한 규칙과 회계기준을 가지고 금융 당국이 임의적이고 재량적으로 적용하여 금융기관에 간섭하는 것은 새로운 관치금융의 형태다. 이러한 신관치금융의 형태는 사라져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 박사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9. 1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