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忠誠)과 반역(反逆) - 송복
	2004-09-13
충성(忠誠)과 반역(反逆)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도대체 이런 나라도 나라일까 할 정도로 정상적인 국가에선 상상조차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별안간 대통령이 국보법 폐지를 들고 나오더니, 무슨 감응이라도 되듯 여당이 거기에 매달린다. 온 나라의 원로들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들고 일어나고, 국민들 또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수가 대통령 발언에 반대하고 나선다. '헌정 수호' 믿지 못해 왜 대통령은 갑자기 국보법을 악법이라 하고, 그것이 없어져야 ‘문명국’으로 간다고 말할까. 여당은 왜 또 그 대통령 말에 거수기라도 자임하듯 쌍수를 들고 나오고, 여당 내 처음 폐지를 반대하던 의원들까지도 의지박약아마냥 고개조차 내밀지 못하는가, 국민들은 또 왜 82~86%가 개정 유지든 현상 유지든 보안법 유지를 바라고, 완전폐지를 바라는 사람은 고작 8~14%밖에 되지 않는가.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이렇게 많은 수의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해 혹은 여당에 대해 반대의견을 보인 예가 있는가. 더구나 보안법은 오랜 세월 부정시되고 거부시되어 온 법이다. 당사자들은 물론 비당사자들에게도 두려운 법이다. 그 법을 국민들은 어째서 어떤 식으로든 유지시키기 바라고, 심지어는 대통령이 ‘문명국’이라는 용어까지 썼는데도 그 대통령의 ‘문명론’을 국민들은 거부하는 것인가. 이유는 명백하다. ‘헌정체제 수호’에 관한 한 국민들은 대통령도 여당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국헌 준수’를 서약한 대통령에 의해 그렇게 공격당해 본 일이 있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일부 국민도 아닌, 여당에 의해 그렇게 밑뿌리째 흔들려 본 일이 있는가. 헌재로부터 ‘위헌 경고’를 받고도 오히려 분풀이라도 하듯 헌법 무시 발언과 행동을 여사로 하는 대통령과 거기에 덩달아 춤추고 나서는 여당, 어느 국민이 그들을 신뢰하고 ‘국가안보’를 맡기려 하겠는가. 문제는 대통령도 여당도 왜 갑자기 그렇게 나오는가이다. 우리처럼 남북 대치가 없이 평화 속에 사는 나라들도 많은 수가 국가안보에 관한 특별법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세계 역사상 드물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 지난 정권 이래 남쪽이 아무리 ‘추파’를 던지고, ‘비위’를 맞추고, 그들 ‘시키는 대로’ 해도, 그들은 여전히 핵을 개발하고, 남쪽을 뒤엎으려 한다. 남쪽이 아무리 변해도 그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문명국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법으로 국체를 안전하게 보전하는 것이 ‘문명국가’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애정 의심 국민의 눈에 비친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아무런 기여가 없는 사람들이다. 오직 투쟁으로 피는 흘려도 성장을 위한 노고로 땀을 흘린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여가 없는 것만큼 ‘대한민국’에 대해 충성심을 갖기 어렵고, 노고의 땀을 흘려보지 않은 것만큼 이 국가에 대해 애정 또한 품기 어렵다. 충성과 애정이 없는데 국기(國基) 또한 얼마나 가벼이 볼 것이며, 북의 요구 또한 얼마나 쉽게 수락할 것인가. 보안법 폐지는 북의 가장 강한 요구사항이다. 마치 전(前) 정권이 뒷돈 내고 뒷거래해서 정상회담 벌이듯 이 정권 또한 정상회담 뒷거래 성사용으로 보안법 폐지를 느닷없이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80% 이상의 국민은 그것을 의심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현 정권세력이 헌정 ‘수호세력’인가 ‘자해(自害)세력’인가,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충성하려 하는가 반역하려 하는가, 그것을 의혹하고 또 의혹하고, 전전긍긍한다. 그것이 여론조사에서 보인 절대 다수의 국민이 보안법 유지를 바라는 이유다. 출처 - 조선일보 2004. 9. 1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