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낙관론 주장할 만한가 - 류동길
	2004-09-06
경제 낙관론 주장할 만한가 한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경제는 바닥을 기고 정치는 짜증나는 실랑이를 벌인다. 사회적으로는 갈등이 증폭되고 사회통합은커녕 네편 내편으로 갈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5일 MBC TV의 대담 프로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보법 유지가 필요하다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대통령이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선 것이어서 대통령이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고, 입법·사법·행정부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상으로 번질 것 같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다 아는 일이고 내년에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노 대통령은 이 날 한국 경제 낙관론을 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5.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거의 1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03년 성장률이 3.1%로 낮았기 때문에 올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더욱이 저소득국은 고소득국에 비해 성장률이 높게 마련인데 한국보다 2, 3배나 소득이 높은 선진국에 비해 성장률이 높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니며 낙관할 일도 아니다. 누가 경제 활성화를 바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업할 의욕을 잃은 기업인, 수십만의 청년실업자, 400만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와 이와 비슷한 규모의 잠재신용불량자, 거리의 택시 운전기사에게 경제 돌아가는 걸 한 번 물어보고 경제 실상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성장률이 아니라 성장잠재력이며 기업을 비롯한 모든 부문의 국제경쟁력이다.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경제포럼에서 중국 학자는 한국 경제를 대학입시에 떨어진 고교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일본의 한국 경제 전문가인 도쿄대학의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교수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정책에 방향이 없다는 것”이라며 “한국 스스로 불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책을 분명히해야 한다. 정부는 분배와 성장 사이를 왔다갔다 했고, 노사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었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는 정책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중단됐다가 재개된 공사가 환경단체의 반대와 어느 스님의 단식 농성 때문에 또 다시 중단됐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수도이전은 밀어붙이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에너지 파동은 언제든 닥치게 돼 있는데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하나 건설하지 못하고 있잖은가. 이런 게 바로 불확실성이고 그래서 정부 정책 방향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기업인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에 3만달러 분배정책’ ‘한국에서 사업하기 어려워 2년 후에는 정치인과 노조만 남고 기업인은 중국으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울분이 배어 있는 목소리다. 최근 미하엘 가이어 주한 독일 대사는 대한상의 주최 간담회에서 “독일은 어려운 변화의 시기를 관련국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달리 한국은 거의 홀로 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외톨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오랜 기간 구축해 온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흔들렸다. 흔들리는 한·미 동맹관계를 보는 주변국의 태도도 변했다.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일본은 우리를 외면하는 상황이 됐다. 통일 후에도 안보 동반자로서 미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는 어떻든 한국은 미국에 등을 돌리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외교나 안보의 바탕은 경제력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제 경제에 ‘올인’ 하자.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 못할 까닭이 있는가. 지도자의 시선이 미래에 가 있으면 그 나라에는 미래가 있다. 과거에 발목잡혀 미래를 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시계바늘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9. 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