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장관제와 대통령책임제 - 박효종
	2004-08-18
책임장관제와 대통령책임제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국무총리와의 역할분담을 선언한 데 이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외교안보분야를 총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겼다. 또 팀제로 운영될 사회분야에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팀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노 대통령은 현 내각을 6개 분야로 나눠 각 분야의 유관부처 간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팀장을 ‘책임장관’이라고 명명했다. 이번에 도입될 예정인 ‘책임장관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개혁적 국정운영 또는 실험용 국정운영인가, 아니면 전략적 국정운영인가. 청와대는 경제부총리가 경제부처를 관장하는 것처럼, 내각을 분야별 팀제로 운영하겠다며 분권형 국정운영,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 및 부총리가 아닌 특정 장관이 몇 개 부처 업무를 총괄하게 된 배경논리가 명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이란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다르다. 기업에서 몇 개 부서를 묶어 팀제를 운영하든, 오너와 가까운 특정 팀장을 임명하든 간에 이들의 임명권은 기업 오너의 고유 권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에서는 국민들이 ‘주인’이요, 대통령은 ‘대리인’이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양해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권력체계의 변화를 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팀제 도입 명분으로 제시된 ‘분권’이라는 개념은 ‘개혁적’ 의미의 개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신임 여부에 따라 팀장이 임명되는 상황에서 책임장관제 도입이 ‘임의적 분권’인지 ‘시스템적 분권’인지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대통령을 정치적 쟁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구도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대통령이 축구경기의 ‘골키퍼’보다 ‘센터포드’처럼 정쟁의 최전방에서 활약하다보니 야당과 언론 공격을 도맡아 하는 선봉에 섰고, 이 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태클’도 많이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민주정치가 ‘여론정치’의 성격이 강하다면 대통령의 인기가 내려간다고 할 때 대통령을 후진에 포진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자구책을 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책임장관제가 민주정치의 핵심인 ‘책임정치’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팀장은 어떠한 권한을 가지며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가. 또 유관부처 간의 관계는 어떠하며, 각 부처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 제도는 책임장관제가 아니라 대통령책임제라는 사실이다. 직접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만큼 대통령은 국정 전반의 책임자다. 따라서 실질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국정 전반의 영욕을 함께해야지, 내각책임제의 대통령처럼 명예만 누리고 비판으로부터 초연한 대통령상을 지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총리와의 역할분담은 헌법정신상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내각 팀제 운영은 헌법에도 그 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생소한 개념이다. 통일부가 외교안보분야를 지휘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외교는 통일의 하위개념이라는 의미일까. 보건복지부가 성격이 서로 다른 부처들을 총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부총리는 지금도 법적 지위에 따라 부처 간 업무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교나 사회 분야의 장관은 부총리가 아닌데도 특정인의 정치적 위상에 따라 팀장이 정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결국 책임부처의 논리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시스템적 운영이 아니라 인치적 운영이 아닐까. 이러한 의구심을 잠재우기 어려울 정도로 팀제 운영의 논리나 그 근거가 궁색하다면, 이번 체제 개편이 이른바 ‘위인설관’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4. 8. 1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