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계의 불안감 해소하라 - 안재욱
	2004-08-10
기업·가계의 불안감 해소하라 9일 열린우리당은 ‘경제 관련 국회 3개 특별위원회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경기 진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비관적인 경제전망’은 언론 탓이라고 몰아붙이던 여당이 경제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유감이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 일시적으로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별로 효과가 없고 부작용만 크다. 특히, 국가 채무와 담세율을 고려할 경우 그렇다. 경기를 부양하고 현 경제 위기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간부문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야당이 주창하는 조세감면 정책이 보다 설득력 있다. 민간부문의 지출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이것 역시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정확한 처방을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경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경제 위기 국면은 근본적으로 기업과 가계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기업과 가계는 사유재산권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까. 내가 투자한 돈이 제대로 내 손 안에 수익과 함께 돌아올까.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혹시 그 과실이 남의 손에 들어가지나 않을까. 이러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가계가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불안감은 현 정부에 책임이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줄곧 분배를 강조하며 인기영합주의적인 분배정책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가진 사람이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속·증여세 포괄주의와 금융계열사 분리명령권 같은 것들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고 아파트 재산세를 50∼100% 올렸다. 아파트별로 300% 가까이 오른 곳도 있다. 세금이 과다해서 감당할 수 없으면 그것은 이미 자기 소유의 건물과 아파트가 아니다. “대기업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주체”라며 투자를 장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출자총액제한과 대기업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을 고집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과 대기업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대기업과 그 주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재산 운용의 한 방법이고, 재산 운용에 관한 결정은 재산 소유자들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투적인 노조 활동,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같은 노조의 무리한 요구, 그리고 그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기업과 투자가의 재산권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사유재산권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가장 근본적 요소다. 실제로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것이 흔들리면 경제가 쇠퇴하여 종국에는 나라가 망한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바로 이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단순히 정부 지출을 늘리고 일부 기업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물론, 이번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수도권 공장총량제 완화와 지방세 중과세 제외 기간 연장 등으로 기업의 투자가 늘 수도 있다. 또한, 쟁의기간중 대체근로 금지를 철폐하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증가하여 기업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지금의 상황에서는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현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시장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일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재산권을 흔드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 경제 위기의 국면은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며, 백약이 무효할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8.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