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과 채집의 원시 때부터 진화를 거듭한 우리 뇌의 본능은 생존에 충실하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속단하는 뇌 덕분에 인간은 위험을 피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극적인 남의 얘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런 걸 뉴스, 정보의 원천으로 인식한다. 과거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속단하는 뇌와 극적인 것에 반응하는 본능 때문에 세상에 대한 오해와 극적인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바쁜 현대의 일상에선 이런 방식이 유용하긴 하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매번 분석하고 솎아내려면 평범한 삶이 가능하겠는가. 그렇더라도 극적인 내용에 담긴 허구는 경계해야 한다. 살인과 폭력, 자연재해, 부패와 갈등, 각종 사고로 접하는 상황들은 늘 좋지 않고, 문제는 악화일로다. 불평등은 심해지고, 지구의 자원은 머지않아 동날 것이다.
우리가 쉽게 언론을 통해 머릿속에 담는 이 그림들은 모두 극적인 세계관이다. 양극단의 비교는 늘 문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도 그걸 좋아한다. 상황을 극적으로 인식하려는 ‘간극 본능’이다. 그 갭만큼 위험성이 존재하고, 세상에 대한 오해가 만들어진다. 양극단의 비교는 스트레스도 유발한다. 그런데 사실,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괜찮은 삶, 중간 소득수준을 유지하고 산다. 자가용 타고 외식을 즐기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휴가철엔 해외여행도 꿈꾼다. 해를 거듭하면서 세상이 나아진 덕분이다. 코로나처럼 더러는 어려움도 겪지만, 지난 백 년 놀라운 진전을 이룬 나라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할 때 우리는 직관적인 마음의 창에 쉽게 갇힌다. 이 극적인 세계관은 낡은 프레임과 지식 때문일까. 최신 정보를 늘 접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세상을 오해하는 걸 보면 맞는 얘긴 아니다. 편향된 언론이나 선전 선동, 가짜 뉴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2018)’를 집필한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팩트’를 왜곡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제시한다. 인간의 인지과정이 만드는 오해와 편견이 흥미롭다. 눈앞의 사실을 보고도 그걸 잘못 해석하는 건 우리 뇌의 작동방식 때문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에 대한 오해는 왜 그토록 바뀌지 않을까. 여기엔 이분법적 사고의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다. 어떤 대상을 두 집단으로 나누는 건 쉽지만 여기에 존재하는 거라곤 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선과 악, 영웅과 악인, 내 편과 네 편, 세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양측으로 나누는 게 직관적이고 편하다. 충돌을 암시한다는 점에선 극적이다. 언론도 이걸 잘 안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상반된 두 부류의 사람과 시각, 집단 사이의 갈등으로 구성한다. 절대다수가 점차 나은 삶으로 이동하는 뻔한 사실보다는 노숙자와 부자의 대비가 더 매력 있다. 다큐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언론보다 더 심한 얘기꾼이다. 힘없는 개인이 거대하고 사악한 기업에 맞서고, 선과 악이 부딪치는 스토리 전개라야 흥행하기 때문이다.
오해를 찾아내고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봐야 한다. 양극단의 값을 대비시키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 평균치로 비교할 때는 분산을 살펴 겹치는 부분이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는 상위와 하위 계층이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가 심각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라도 흔히 간극이 존재하려니 생각하는 중간층에 사실은 다수가 놓여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도 경계해야 한다. 건물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아래 건물들의 높이를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다. 모두 작게 보이는 것처럼 부자의 높이로 보면 다들 가난해 보인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98% 국민과는 무관하다는 기재부 차관의 말, 코로나19의 피해자 집단을 88%로 구분해 개인마다 나눠준 재난지원금은 모두 양쪽을 나누려는 본능을 이용한 이분법적 사고다. 소수의 부자를 겨냥한 핀셋 조세도 형평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수탈이 된다. 실업자와 독거노인, 소외계층의 절대빈곤을 외면하고 대부분 국민에게 공짜로 돈을 나눠주는 건 선거철 인기에 영합한다는 의심을 산다. 뉴스 때마다 대선 후보자들 입에선 선과 악, 정의와 부정, 집단 간의 갈등, 점점 커지는 불평등 얘기가 쏟아진다. 간극 본능을 이용한 내 편과 네 편의 ‘갈라치기’인지 ‘팩트’인지를 지금은 유권자가 더 제대로 보고 판단해야 할 때다. 이분법적 사고에는 허구가 많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의 허구를 경계하자
수렵과 채집의 원시 때부터 진화를 거듭한 우리 뇌의 본능은 생존에 충실하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속단하는 뇌 덕분에 인간은 위험을 피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극적인 남의 얘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런 걸 뉴스, 정보의 원천으로 인식한다. 과거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속단하는 뇌와 극적인 것에 반응하는 본능 때문에 세상에 대한 오해와 극적인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바쁜 현대의 일상에선 이런 방식이 유용하긴 하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매번 분석하고 솎아내려면 평범한 삶이 가능하겠는가. 그렇더라도 극적인 내용에 담긴 허구는 경계해야 한다. 살인과 폭력, 자연재해, 부패와 갈등, 각종 사고로 접하는 상황들은 늘 좋지 않고, 문제는 악화일로다. 불평등은 심해지고, 지구의 자원은 머지않아 동날 것이다.
우리가 쉽게 언론을 통해 머릿속에 담는 이 그림들은 모두 극적인 세계관이다. 양극단의 비교는 늘 문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세상을 보는 우리의 눈도 그걸 좋아한다. 상황을 극적으로 인식하려는 ‘간극 본능’이다. 그 갭만큼 위험성이 존재하고, 세상에 대한 오해가 만들어진다. 양극단의 비교는 스트레스도 유발한다. 그런데 사실,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괜찮은 삶, 중간 소득수준을 유지하고 산다. 자가용 타고 외식을 즐기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휴가철엔 해외여행도 꿈꾼다. 해를 거듭하면서 세상이 나아진 덕분이다. 코로나처럼 더러는 어려움도 겪지만, 지난 백 년 놀라운 진전을 이룬 나라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할 때 우리는 직관적인 마음의 창에 쉽게 갇힌다. 이 극적인 세계관은 낡은 프레임과 지식 때문일까. 최신 정보를 늘 접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세상을 오해하는 걸 보면 맞는 얘긴 아니다. 편향된 언론이나 선전 선동, 가짜 뉴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2018)’를 집필한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팩트’를 왜곡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제시한다. 인간의 인지과정이 만드는 오해와 편견이 흥미롭다. 눈앞의 사실을 보고도 그걸 잘못 해석하는 건 우리 뇌의 작동방식 때문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에 대한 오해는 왜 그토록 바뀌지 않을까. 여기엔 이분법적 사고의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다. 어떤 대상을 두 집단으로 나누는 건 쉽지만 여기에 존재하는 거라곤 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선과 악, 영웅과 악인, 내 편과 네 편, 세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양측으로 나누는 게 직관적이고 편하다. 충돌을 암시한다는 점에선 극적이다. 언론도 이걸 잘 안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상반된 두 부류의 사람과 시각, 집단 사이의 갈등으로 구성한다. 절대다수가 점차 나은 삶으로 이동하는 뻔한 사실보다는 노숙자와 부자의 대비가 더 매력 있다. 다큐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언론보다 더 심한 얘기꾼이다. 힘없는 개인이 거대하고 사악한 기업에 맞서고, 선과 악이 부딪치는 스토리 전개라야 흥행하기 때문이다.
오해를 찾아내고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봐야 한다. 양극단의 값을 대비시키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 평균치로 비교할 때는 분산을 살펴 겹치는 부분이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는 상위와 하위 계층이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가 심각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라도 흔히 간극이 존재하려니 생각하는 중간층에 사실은 다수가 놓여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도 경계해야 한다. 건물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아래 건물들의 높이를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다. 모두 작게 보이는 것처럼 부자의 높이로 보면 다들 가난해 보인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98% 국민과는 무관하다는 기재부 차관의 말, 코로나19의 피해자 집단을 88%로 구분해 개인마다 나눠준 재난지원금은 모두 양쪽을 나누려는 본능을 이용한 이분법적 사고다. 소수의 부자를 겨냥한 핀셋 조세도 형평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수탈이 된다. 실업자와 독거노인, 소외계층의 절대빈곤을 외면하고 대부분 국민에게 공짜로 돈을 나눠주는 건 선거철 인기에 영합한다는 의심을 산다. 뉴스 때마다 대선 후보자들 입에선 선과 악, 정의와 부정, 집단 간의 갈등, 점점 커지는 불평등 얘기가 쏟아진다. 간극 본능을 이용한 내 편과 네 편의 ‘갈라치기’인지 ‘팩트’인지를 지금은 유권자가 더 제대로 보고 판단해야 할 때다. 이분법적 사고에는 허구가 많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e대한경제신문 2021. 12.21[칼럼]
<원문>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12191630135810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