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환율, 금리의 인상에 물류난까지 더해졌다. 기업에는 고난의 시기다. 언젠가 끝난다는 게 그나마 희망이다. 경제는 늘 그렇게 반복된다. 그런데 전혀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기업에 돈을 공급할 때 재무적 요소만이 아니라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한다는 글로벌 합의다. 이게 기업경영의 새로운 상수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까지 글로벌 연기금과 투자기업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ESG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자본이 움직이는 새로운 길,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자본의 의무’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우리 기업들도 바빠졌다. 세 가지 비재무적 요소로 인해 투자의 흐름이 바뀌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의 관리가 강화되는 것도 ESG 경영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경총은 지난 4월 대그룹 18개 사장단이 참여하는 경영계의 거버넌스인 ‘ESG 경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투자자에게 이끌리기보단 자율적으로 사회적 책임,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체계를 확립한다는 선언까지 했다.
“ESG는 뉴노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언론의 표현처럼 지금은 ESG 열풍이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회계‧법무법인과 컨설팅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개인투자자도 연못에서 고래처럼 자라고 있는 국민연금의 ESG 투자에 촉각을 세우고, 언론과 국회도 ESG 포럼을 만들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사실 ESG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인류 공영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고 또 추구해 온 가치다. 기후변화나 청정생산, 유해물질 감시 등 환경 문제, 노동자 인권과 산업안전, 공정거래 등의 사회문제, 주주권익이나 투명경영, 시장감시 등의 지배구조 문제는 공동의 이슈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뜨거워졌을까.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법·제도나 사회적 압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글로벌 큰손들을 움직여 ‘좋은 기업’에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ESG를 반영해 달라는 UN의 요청에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면서 탄력을 받은 결과다. 외곽에선 ESG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시장가치를 높이고 위험을 줄인다는 실증연구까지 속속 발표되면서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우리 정부도 상장사의 지속가능 경영공시 의무화, ESG 투자 활성화를 위한 녹색분류체계 마련 등 인프라 전환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회에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투자 운용과 공공 조달에서의 ESG 요소 고려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은행권에선 대출심사에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31일 문 대통령은 세계 정상들 앞에서 온실가스 ‘2030년까지 40% 감축, 2050년까지 제로 달성’까지 천명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ESG란 이름의 규제가 쏟아진다면 기업과 소비자들은 그 값비싼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당장 만만치 않은 비용부담이 문제다. 저탄소 기술개발, 신규 설비투자와 기존 자산의 평가절하,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인상, 폐기물 처리비용 등에 따라 늘어나는 생산원가는 모두 상품의 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규제의 눈높이가 대기업에 맞춰지게 되면 ESG는 중소기업을 사지로 내모는 높은 진입장벽이 된다. ESG 잣대는 이들의 자금 융통과 투자 유치를 어렵게 하고 공공 조달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투자자의 판단이 경제적 성과와 연동될 때라야 ESG는 의미가 있다. 잘해보자고 하는 수단인 ESG가 목적으로 바뀔 때 시장경제는 혼란에 빠진다. 투자자 이익을 전제로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생존전략을 먼저 믿어야 한다. ESG에 실패하면 시장이 먼저 평가한다. 지금의 밴드웨건 열풍을 경계해야 하는 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지배구조원과 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단 세 곳이 주도하는 국내의 ESG 평가시장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그들이 지배주주이거나 전‧현직 임원이 평가대상 기업의 임원을 겸직하는 경우의 이해 상충에 대한 감시체계조차 없다. 자본제공자마다 다양한 투자목적과 시기, 리스크 부담 등의 고려 없이 ESG 평가결과를 그대로 투자에 반영하기 어렵고, 같은 업종이라도 기업마다 내부환경이 달라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없다. 국제적인 표준으로 쓸 평가지표의 마련이 계속 미루어지는 건 각국이 이 같은 문제들을 따져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밀어붙이고 ESG를 선점한 평가기관들이 서둘러 만든 지표로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취지와 달리 기업을 위축시키고 투자의 방향을 잘못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ESG가 대세인 건 분명하지만 이 신드롬의 역기능을 신중하게 따져 ESG를 제대로 평가할 지표를 정교하게 다듬는 게 먼저다. 기업은 지금도 힘들다.
ESG 열풍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유가와 환율, 금리의 인상에 물류난까지 더해졌다. 기업에는 고난의 시기다. 언젠가 끝난다는 게 그나마 희망이다. 경제는 늘 그렇게 반복된다. 그런데 전혀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기업에 돈을 공급할 때 재무적 요소만이 아니라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한다는 글로벌 합의다. 이게 기업경영의 새로운 상수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까지 글로벌 연기금과 투자기업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ESG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자본이 움직이는 새로운 길,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자본의 의무’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우리 기업들도 바빠졌다. 세 가지 비재무적 요소로 인해 투자의 흐름이 바뀌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의 관리가 강화되는 것도 ESG 경영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경총은 지난 4월 대그룹 18개 사장단이 참여하는 경영계의 거버넌스인 ‘ESG 경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투자자에게 이끌리기보단 자율적으로 사회적 책임,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체계를 확립한다는 선언까지 했다.
“ESG는 뉴노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언론의 표현처럼 지금은 ESG 열풍이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회계‧법무법인과 컨설팅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개인투자자도 연못에서 고래처럼 자라고 있는 국민연금의 ESG 투자에 촉각을 세우고, 언론과 국회도 ESG 포럼을 만들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사실 ESG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인류 공영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고 또 추구해 온 가치다. 기후변화나 청정생산, 유해물질 감시 등 환경 문제, 노동자 인권과 산업안전, 공정거래 등의 사회문제, 주주권익이나 투명경영, 시장감시 등의 지배구조 문제는 공동의 이슈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뜨거워졌을까.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법·제도나 사회적 압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글로벌 큰손들을 움직여 ‘좋은 기업’에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ESG를 반영해 달라는 UN의 요청에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면서 탄력을 받은 결과다. 외곽에선 ESG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시장가치를 높이고 위험을 줄인다는 실증연구까지 속속 발표되면서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우리 정부도 상장사의 지속가능 경영공시 의무화, ESG 투자 활성화를 위한 녹색분류체계 마련 등 인프라 전환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회에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투자 운용과 공공 조달에서의 ESG 요소 고려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은행권에선 대출심사에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31일 문 대통령은 세계 정상들 앞에서 온실가스 ‘2030년까지 40% 감축, 2050년까지 제로 달성’까지 천명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ESG란 이름의 규제가 쏟아진다면 기업과 소비자들은 그 값비싼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당장 만만치 않은 비용부담이 문제다. 저탄소 기술개발, 신규 설비투자와 기존 자산의 평가절하,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인상, 폐기물 처리비용 등에 따라 늘어나는 생산원가는 모두 상품의 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규제의 눈높이가 대기업에 맞춰지게 되면 ESG는 중소기업을 사지로 내모는 높은 진입장벽이 된다. ESG 잣대는 이들의 자금 융통과 투자 유치를 어렵게 하고 공공 조달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투자자의 판단이 경제적 성과와 연동될 때라야 ESG는 의미가 있다. 잘해보자고 하는 수단인 ESG가 목적으로 바뀔 때 시장경제는 혼란에 빠진다. 투자자 이익을 전제로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생존전략을 먼저 믿어야 한다. ESG에 실패하면 시장이 먼저 평가한다. 지금의 밴드웨건 열풍을 경계해야 하는 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지배구조원과 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단 세 곳이 주도하는 국내의 ESG 평가시장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그들이 지배주주이거나 전‧현직 임원이 평가대상 기업의 임원을 겸직하는 경우의 이해 상충에 대한 감시체계조차 없다. 자본제공자마다 다양한 투자목적과 시기, 리스크 부담 등의 고려 없이 ESG 평가결과를 그대로 투자에 반영하기 어렵고, 같은 업종이라도 기업마다 내부환경이 달라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없다. 국제적인 표준으로 쓸 평가지표의 마련이 계속 미루어지는 건 각국이 이 같은 문제들을 따져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밀어붙이고 ESG를 선점한 평가기관들이 서둘러 만든 지표로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취지와 달리 기업을 위축시키고 투자의 방향을 잘못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ESG가 대세인 건 분명하지만 이 신드롬의 역기능을 신중하게 따져 ESG를 제대로 평가할 지표를 정교하게 다듬는 게 먼저다. 기업은 지금도 힘들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e대한경제신문 2021. 11.24[칼럼]
<원문>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11221651205370859